느헤미야
제목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성경
누가복음 17장 11-19절

중심말씀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느 6:3)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6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느헤미야가 왜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을 쌓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결국 나라를 잃었습니다.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은 불타고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페르시아 시대가 되면서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웠고, 훗날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성벽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도시의 외관이 좋지 않다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성벽은 도시를 보호하는 방어선이었습니다.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외부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페르시아 왕궁 수산에 있던 느헤미야에게 고국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느헤미야 1장 3절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그가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왕의 술 관원은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신임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도 편안하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비웃었습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조롱으로도 멈추지 않자 공격을 계획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을 보면 백성들은 한 손으로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습니다. 성벽을 건축하는 사람은 허리에 칼을 차고 일해야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외부의 공격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5장에 들어가면 내부의 문제까지 발생합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고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밖에서는 원수가 공격하고 안에서는 문제가 터졌습니다. 

본론

느헤미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본문 6장 1절에 도달합니다.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드디어 성벽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성문에 문짝만 달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다시 나타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하자 이제 성벽을 쌓고 있는 사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조롱해도 안 됩니다, 위협해도 안 됩니다. 공격해도 안 됩니다, 내부에 문제가 생겨도 느헤미야가 계속 성벽을 쌓습니다. 그러자 전략을 바꿉니다. “느헤미야를 성벽에서 내려오게 하자.” 

오늘 본문 전체를 관통하는 싸움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벽을 쌓으려는 느헤미야와 그를 성벽에서 내려오게 하려는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어떻게 끝까지 사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네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큰 역사가 완성되어 갈수록 방해를 분별해야 합니다 

1절과 2절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로운 방해가 시작됩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법입니다. 이전에는 비웃었습니다. 위협했습니다.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부드럽습니다. “우리 한번 만납시다.” “서로 이야기를 해 봅시다.”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풀어 봅시다.” 겉으로 보면 나쁜 제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2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느헤미야는 그들의 말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의도를 분별했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모든 초청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제안이 좋은 제안도 아닙니다. 좋아 보이는 길이라고 모두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길도 아닙니다. 때로는 나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끌어내기 위한 제안도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무서운 모습으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좋은 기회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사람의 인정으로 찾아옵니다. 달콤한 제안으로 찾아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잠깐인데 뭐 어때.”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에게는 열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이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아 보이는 것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가려내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만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만남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성벽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선택이 나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지키게 하는가, 내려오게 하는가?”가 이 본문에서의 분별 기준입니다. 느헤미야는 제안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제안이 가져올 결과를 보았습니다. 

2. 큰 역사를 하는 사람은 내려가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인 3절입니다. 느헤미야가 사자들을 보내 대답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얼마나 힘 있는 말씀입니까? 느헤미야는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싫습니다”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을 믿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왜 내려가지 않습니까? 느헤미야가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가 내려가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성벽 재건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느헤미야가 말한 ‘큰 역사’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에게 큰 역사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역사’는 일, 사역, 과업(work)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고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 역시 단순히 기적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한 영혼이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말씀으로 세우는 것이 큰 역사입니다. 성도에게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가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일이 큰 역사일 수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신문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상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면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큰 역사를 결정하는 기준은 일의 크기가 아니라 누가 맡기셨느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성벽은 무엇입니까? 가정입니까? 자녀입니까? 일터입니까? 교회입니까? 돌보아야 할 한 사람입니까? 끝까지 지켜야 할 믿음입니까? 오랫동안 기도하며 감당하고 있는 사명입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쌓아야 할 성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남의 성벽을 바라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되는데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비교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산발랏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내려가지 마십시오. 자존심이 상했다고 내려가지 마십시오, 억울하다고 내려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가 내려가지 마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려가지 마십시오.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모든 부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한 번이 아닙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대답은 네 번 모두 같았습니다. “나는 내려갈 수 없다.”

신앙의 힘은 매번 새로운 대답을 만들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결정한 것을 끝까지 지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예배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기도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왜입니까? 내가 지금 큰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끌어내리지 못하면 거짓말로 흔듭니다  

네 번의 회유가 실패하자 산발랏은 방법을 바꿉니다. 5절입니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이번에는 봉하지 않은 편지입니다. 중요한 편지라면 봉인해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봉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달하는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내용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소문을 퍼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더 심각합니다. 

6절입니다.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느헤미야가 반역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왕이 되려고 성벽을 쌓는 것이 아니냐?” 

7절에서는 선지자까지 세워 자신을 유다의 왕이라고 선전하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협박을 합니다.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이 말이 페르시아 왕에게 들어가면 느헤미야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반역 혐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대답을 보십시오. 

8절입니다.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끝입니다. 길게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산발랏을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네가 만들어 낸 이야기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일을 합니다.

여기에 놀라운 지혜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길게 상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일보다 거짓말을 해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됩니다. 살다 보면 오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것을 생각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선한 의도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해명은 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모든 이야기를 쫓아다니며 바로잡으려고 하면 결국 내 인생이 다른 사람의 말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짓 소문보다 사명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사람의 입을 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 때문에 내 손을 멈추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4. 두려울수록 하나님께 힘을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 9절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진짜 목적을 정확하게 간파합니다.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그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움이었습니다. 왜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고 했습니까?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손’입니다.

적들이 원했던 것은 성벽의 돌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벽을 쌓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손이 멈춥니다. 두려움이 들어오면 하던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낙심하면 손에서 연장을 내려놓게 됩니다. 산발랏은 바로 그것을 노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느헤미야가 기도합니다.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얼마나 놀라운 기도입니까?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산발랏을 없애 주십시오.” “도비야를 심판해 주십시오.” “게셈을 쫓아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느헤미야는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하기 전에 그 환경을 이겨 낼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만이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도 응답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만이 응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더 큰 응답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없애 주십시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감당할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말 때문에 내 손이 약해지지 않게 하옵소서.” “실망 때문에 손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두려움 때문에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끝까지 완성하게 하옵소서.” 

결론

나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계속 충돌합니다. 하나는 느헤미야를 내려오게 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또 하나는 끝까지 성벽을 쌓으려는 움직임입니다. 산발랏은 만나자고 했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네 번이나 불렀습니다. 그래도 내려오지 않자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왕에게 고발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산발랏보다 더 중요한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성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성벽이 있습니다. 그 성벽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일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교회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영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앞에서 한 가지만 분명하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을 발견했다면 쉽게 내려오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맡기셨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가 나를 인정하느냐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세우셨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힘이 빠질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주여,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손이 피곤해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도 내려가지 않게 하옵소서.” “오해받고 억울해도 사명을 중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감당할 힘도 주실 줄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큰 역사를 하는 사람은 방해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방해가 있어도 내려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큰 역사는 반드시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 그것이 나의 큰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그리고 우리의 손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기도합시다. “주여,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성벽을 끝까지 세우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사명을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끝까지 붙들게 하시고, 어떤 유혹과 두려움 앞에서도 믿음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의 말과 거짓 소문에 흔들리지 말게 하시며, 느헤미야처럼 “내가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부족할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게 하시고, 맡겨 주신 일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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