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9일 오후 서울 안암동 한국신학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신학적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화’라는 주제로 2026년 가을학기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교수)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박찬호 교수(백석대)와 이신건 교수(서울신대 은퇴교수)가 논평했다. 김 교수는 계시를 중심으로 창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호 교수는 과학적 진화론과 철학적 진화주의의 구분을, 이신건 교수는 유신진화론의 다양성과 창조 기록의 신앙고백적 성격을 제시했다.
세미나 진행을 맡은 김균진 한국신학아카데미 원장은 준비된 논문 발표와 논평,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 학문적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견해가 다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해 달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요한복음 17장 21~23절을 함께 읽고 성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드린 뒤 발표와 논평을 진행했다.
김영한 교수, 계시 중심의 창조 이해 제시
김영한 교수는 창조를 인간의 관찰이나 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인간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묻는 욥기의 말씀을 언급하며, 창조 당시를 목격한 인간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창조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계시 우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경의 전승과 문서 형성 과정을 인정하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창조와 타락을 문학적 표현으로만 해석할 경우 실제 사건으로서의 의미가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자연과학의 성과를 모두 부정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나 1만 년 정도로 보는 젊은 지구 창조론에 대해서는 현대 과학의 설명과 차이가 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날’도 반드시 24시간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되 그러나 반드시 24시간일 필요는 없다”며 더 긴 기간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한다고 말했다. 문자적 해석을 기본으로 하면서 문학적 표현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담과 하와를 실제 인물로 이해하고 타락의 역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개혁신학의 신조 및 신약성경의 증언과 연결하며, 유신진화론이 역사적 아담과 타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김 교수는 유신진화론이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면서도 이후의 과정을 자연법칙에 맡기는 이신론적 설명으로 기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생명의 기원과 변이·자연선택, 열역학과 유전학 등을 들어 진화론에도 비판을 제기했다. 창조론은 태초의 창조와 지속적인 창조, 종말론적 새 창조를 함께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박찬호 교수 “진화론과 진화주의 구별해야”
박찬호 교수는 김 교수의 발제가 젊은 지구 창조론과 오래된 지구 창조론 중 하나를 개혁신학의 유일한 입장으로 절대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평가했다. 성경의 권위를 유지하면서 현대 과학과 대화하고, 역사적 아담과 타락을 논의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에서는 현대 진화생물학이 일면적으로 소개됐다고 지적했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다윈의 진화론을 무너뜨린 발견이 아니라, 고전적 다윈주의의 유전 메커니즘 설명을 보완하고 현대 진화론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타적 행동을 진화론의 결정적 반례로 제시하는 데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유전자 중심의 설명과 집단선택, 다수준 선택 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진화생물학 안에서 논의되는 주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박 교수는 “과학적 진화론으로부터 무신론적 자연주의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생명체의 변화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과학적 진화론과, 이를 인간과 세계 전체를 해석하는 세계관으로 확대하는 진화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행동의 생물학적 조건을 설명하는 것과 그 희생의 도덕적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신학은 진화 연구 전체를 부정하기보다 자연과학적 설명이 사랑과 도덕적 책임, 종교적 신앙의 의미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신진화론에 대해서도 역사적 아담과 인류의 관계, 죄와 죽음의 기원, 하나님의 형상, 아담과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랜시스 콜린스를 예로 들며 “그의 진화론적 창조 이해를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그의 기독교 신앙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생명의 전체 역사를 실험실에서 반복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진화생물학을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실험과 비교 연구, 화석 자료, 유전체 분석, 관찰 가능한 집단의 변화 등 여러 증거와 역사적 추론이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신건 교수, 유신진화론의 다양성과 신앙고백적 해석 강조
이신건 교수는 김 교수의 발제가 성경의 문학적·비유적·상징적 해석 가능성을 인정하고 현대 과학과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유신진화론이나 진화론적 창조론을 하나의 입장으로 묶어 설명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유신진화론 안에도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진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설명과 피조물과의 협력, 계속적인 창조를 통해 진화를 인도한다는 설명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일률적으로 이신론이나 타협주의로 규정하기보다 각각의 주장을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창조과학에 대해서도 “성경의 계시적 차원을 자연적 차원으로, 계시를 과학으로 끌어내린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의 발제가 진화를 반박하는 과학자들의 견해에 치우쳤다며, 실증 자료에 근거한 진화론을 창조 신앙과 같은 의미의 신념 체계로 보는 데에도 이견을 제시했다.
창세기의 창조 기록에 대해서는 목격자의 관찰 보고보다 전승과 이스라엘의 구원 경험을 반영한 신앙고백적 서술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대 근동의 창조 전승을 수용하고 재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인간·피조세계의 관계를 드러냈다는 견해였다.
이 교수는 칼 바르트의 논의를 소개하며, 창조를 일반적인 역사 연구의 방식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말이 창조 자체를 허구로 본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성경을 신앙의 규범으로 삼는 것과 자연과학적 쟁점에서 성경의 표현을 과학적 설명보다 우위에 놓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적 창조가 새 창조로 이어진다는 김 교수의 설명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의미를 기존 세계의 유지와 보존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몰트만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서도 피조세계를 새롭게 하실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창조 세계의 고통과 희생, 멸종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도 질문했다. 고통의 원인을 인간에게만 돌리거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로 설명할 때 생기는 문제를 살펴야 한다며,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창조의 궁극적 완성을 소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한 교수, 자연주의적 세계관 비판 취지 설명
논평에 대한 답변에서 김영한 교수는 개별적인 변화와 발전을 모두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무신론적 자연주의로 설명하는 철학적 입장을 비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이해가 넓어지는 것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진화론에 대한 비판도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뒤 나머지 과정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자신이 이해해 온 입장을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창조에 대해서는 “시원적인 창조의 반복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주셨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논의에는 하나님까지 변화의 과정 안에 놓는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발제 과정에서 “제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논평을 마치며 자신의 과학적·신학적 지식에 한계가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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