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성경
여호수아 18장 1~10절
중심 말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수 18:3)
서론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여기서 ‘지체하다’는 말은 단순히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뜻보다 강합니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느슨해져 손을 늘어뜨린 채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질문은 단순히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책망이 아닙니다. “왜 아직도 손을 놓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는데 왜 움직이지 않느냐?” “해야 할 일을 알면서 왜 계속 미루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말은 ‘어느 때까지’입니다. 이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책망입니다. “너희는 이미 움직였어야 한다.” 둘째는 안타까움입니다. “내가 이미 주었는데 왜 누리지 못하고 있느냐.” 셋째는 촉구입니다. “이제라도 일어나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지체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미룹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바쁘다고 미룹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미룹니다.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다음에 하겠다고 미룹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편이 좋아지면 하겠다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늦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순종이 늦어진 것입니까?
본론
1.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셨습니다
3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줄 땅’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신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심판하시기 전에 롯에게 빨리 그 성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6절에 아주 인상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롯은 몰라서 지체한 것이 아닙니다.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판이 임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 가지고 있는 것, 익숙하게 살아왔던 것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알고도 움직이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압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압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압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압니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금 있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시간이 나면.”, “마음이 정리되면.”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체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체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벌금처럼 빼앗아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앞에 땅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을 내딛지 않으니 자기 기업으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의 가장 큰 손실은 이것입니다. 주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땅보다 먼저 회막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이스라엘의 중심지는 그동안 길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복 전쟁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이스라엘 백성이 실로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집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군사기지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시장을 만든 것도 아니며 회막을 세웠습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삶의 중심에 모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목적은 단순히 영토를 넓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땅보다 먼저 예배입니다. 소유보다 먼저 하나님입니다. 성공보다 먼저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더 좋은 집에 살게 하기 위해서만입니까? 사업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막입니다. 내 가정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내 사업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내 자녀의 진로에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 계획과 선택에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막을 세웠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아직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가 일곱 지파나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막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지체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도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도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배는 반드시 삶의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회막 주변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3. 이제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이 한 절에 놀라울 만큼 구체적인 행동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일어나라. 두루 다니라. 그려 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순종의 네 단계입니다.
첫째, 일어나라.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성경을 읽어야지.” “언젠가는 새벽기도를 시작해야지.” “언젠가는 전도해야지.” “언젠가는 교회를 더 열심히 섬겨야지.”
그런데 여러분, 그 ‘언젠가’가 언제입니까?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도 하기 어렵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이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머리로 동의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떼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마침내 이렇게 기록됩니다.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그들이 설교를 듣고 감동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참 은혜롭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둘째, 두루 다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그 땅에 두루 다니라.” 직접 가보라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발로 밟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동적으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걸어가야 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해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상봉동과 면목동, 중화동과 망우동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외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픈 사람이 누구인지,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야 합니다. 기도는 행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셋째, 그려 오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두루 다닌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막연하게 돌아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조사하고 기록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만들어 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신앙 원리가 있습니다. 믿음은 막연함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계획해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가 있다면 이름을 적어놓고 기도하십시오.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면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정하십시오. 교회를 섬기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사업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조사하고 계획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아무 계획도 필요 없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직접 땅을 살피고 그림을 그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넷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자기들이 직접 조사했습니다. 자기들이 걸었습니다. 자기들이 지도를 그렸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했습니까? 아닙니다. 1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최종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권은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반대로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승인만 요구하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 18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원리입니다. 잠언 1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계획은 사람이 합니다. 그러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4. 지체에는 반드시 손실이 있습니다
저는 과거 연구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연구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정해진 기간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연구를 끝내고 결과물을 제출해야 한다는 계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기한을 넘기면 어떻게 됩니까? 계약 조건에 따라 지체상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라도 연구를 마무리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지체에는 손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도 비슷한 원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영적 지체상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가 순종을 하루 늦게 했다고 벌금을 매기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의 지체상금이 아닙니다. 순종을 미루는 동안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은혜가 있고, 놓치는 기회가 있고, 성장하지 못한 시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10년을 미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벌금을 청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10년 동안 말씀을 읽으며 깨닫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기도를 미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동안 기도를 미뤘다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누릴 수 있었던 10년의 시간이 지나간 것입니다. 용서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내가 먼저 전화해야지.” 그러다가 다시는 전화할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께,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왜 미룹니까? 전도도 그렇습니다. “다음에 전도해야지.” 그런데 그 다음이 우리에게 반드시 보장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지체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오늘 누리지 못하고, 오늘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을 오늘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말씀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입니다.
5.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이것이 오늘 설교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해진 다음 일어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 움직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돈이 충분히 생기면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남으면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도 아름다운 섬김이 있었습니다. 북콘서트를 위해 어떤 분은 아름다운 꽃을 준비해 오셨고, 어떤 분은 좋은 과일을 가지고 와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하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감사하면 움직입니다. 사랑하면 움직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결국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어제 장경동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돌아가신 후 직접 전화까지 주셨습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도 감사했습니다. 교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을 억지로 끌어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지역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두루 다니고,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일어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기도하십시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한 장이라도 시작하십시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마음을 여십시오. 전도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그 이름을 적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까? 환경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두루 다니라.” “그려 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체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일어나면 됩니다. 오랫동안 기도를 쉬었습니까? 오늘 다시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말씀을 멀리했습니까? 오늘 성경을 다시 펴면 됩니다. 사명을 미뤘습니까? 오늘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과거의 지체 속에 주저앉히려고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나 발을 내디뎌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십시오. 내가 해야 할 일에는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오늘 말씀 앞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이 늦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순종이 늦어진 것입니까? “너희가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이제는 일어납시다. 믿음으로 발을 내딛읍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땅을 두루 다닙시다. 믿음의 청사진을 그려 하나님 앞에 가져옵시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와 결정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일어나 떠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은혜를 삶으로 누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아름답게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너희가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했고, 순종해야 할 때 미루었으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알면서도 형편과 환경을 핑계 삼아 주저앉았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지체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시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게 하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현장을 두루 다니게 하옵소서. 막연한 생각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믿음의 청사진을 그리게 하시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모든 계획과 결과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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