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랜드 박사의 기고글인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실 수 없었을까?’(Why couldn’t Jesus tell His disciples everything?)를 10월 3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랜드 박사는 2013년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Southern Evangelical Seminary)의 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1년부터 CP의 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몇 주 전 필자는 사형선고를 받은 니달 하산(Nidal Hasan) 사건을 다룬 칼럼에서 중요한 성경 해석 원리를 짧게 언급했다. 몇몇 독자가 이에 관한 의견을 보내왔기에, 이번에는 그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 출발점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이다. 약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낸 제자들은 그분이 떠나신다는 말씀에 깊은 근심에 빠졌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근심이 너희 마음에 가득하였도다”(요 16:6)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주님은 자신이 떠나시는 것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설명하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제자들에게는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진리가 있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대목은 예수님께서 전하실 말씀이 더 있었지만, 당시 제자들은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의 지식이나 가르치는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구원의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중학생과 대학원생에게 같은 주제를 설명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과 깊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처한 상황과 이해의 정도를 아셨으며, 앞으로 성령께서 그들을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필자가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것도 이와 관련된 ‘점진적 계시’의 원리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됐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뜻을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내셨다. 앞서 주어진 계시를 바탕으로 이후의 계시를 통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러한 구원의 전개를 보여준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바울은 이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으며, 이제 신자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라고 설명한다(갈 4:6–7).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 이후의 이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일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이루셨고, 오순절에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사건이 지닌 의미를 깨닫고 증언하는 이들이 됐다. 예수님과 함께 걸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과 사건들이 새로운 빛 아래 드러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역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성령 강림 이후의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이 기다렸던 구원의 사건을 이미 성취된 일로 바라보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의미를 배운다.
다윗은 참회의 기도에서 이렇게 간구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이 기도는 구약 시대에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역사하셨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이후 성령께서 신자 안에 거하시며 공동체를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선명하게 증언한다.
필자는 이러한 구속사적 전환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본다.
기록된 시점과 기록된 사건의 시점을 구분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각 책이 기록된 시점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살펴야 한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기록됐다. 그러나 복음서가 주로 다루는 것은 그 이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다. 따라서 본문 속 제자들이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는지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처음부터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예수님이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
반면 사도행전과 서신서, 요한계시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교회의 삶과 가르침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지닌 의미와 신자의 정체성, 교회의 사명에 관한 설명을 만난다.
이러한 차이를 살피면 성경의 각 본문을 고립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전개되는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성취된 구원의 빛 아래 성경을 읽는다
필자는 열여섯 살에 설교를 시작한 이후 60년 넘게 복음을 전해왔다. 그동안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는 확신을 지켜왔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점진적으로 드러내셨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여겨왔다. 앞서 주어진 말씀을 해석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 이후에 밝혀진 진리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이나 복음서의 권위를 낮추려는 뜻이 아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이후의 계시와 연결해 더욱 온전히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각 본문의 역사적·문학적 문맥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이 그 말씀을 어떻게 비추는지 살피는 것이다.
필자가 창세기와 신명기, 시편과 아모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설교할 때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가르침을 함께 검토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는 이 말씀들을 앞선 계시의 의미를 밝히는 ‘하나님의 주석’처럼 활용해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의 한계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성령께서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성경을 읽는 우리도 그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이해만을 의지하기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안에서 각 본문의 의미를 배워가야 한다. 이러한 읽기가 필자에게 그랬듯 독자들의 신앙 여정에도 빛과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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