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Hope against Hope)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 으로 세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나이 백 세, 자기 몸과 아내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며, 쓰러진 자리와 낙심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에 힘썼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바로 부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하나님께는 끝도, 절망도 없다. 창조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나는 이 책을 쓰며 모든 것을 넘겨주고 느보 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광야 40년 세월을 되돌아보는 모세의 모습을 묵상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사랑했던 모세처럼, 나 역시 부활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소망, 기도의 제목을 올려 드릴 것이다.
김대평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성도로, 언약을 따라 이 땅을 살아가더라도 인생에서 만나는 고난과 어려움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 건강, 돈, 관계, 비전, 꿈, 어느 것도 쉽고 만족할 만한 건 없다. 기도의 응답은 더디고, 마음은 자꾸 흔들리고 낙심한다. 이런 일 때문에 상담하고 하소연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목사이자 선생인 나에게도 명쾌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살아낸 성경의 인물들에게 길을 묻고, 그 길을 따라갈 믿음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뿐이다. 그중 한 명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혼히 너무 멀고 감히 닿을 수 없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우성민 – 언약지기, 아브라함
그렇다면 거기서 아담의 역할은 뭐였나? 단순히 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여기서 '경작하다'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아바드로 '섬기다'라는 뜻이고, '지키다'는 샤마르로 '돌본다'는 뜻이다. 제사장이 성막을 섬기고 지킬 때 쓰는 단어들이다. 즉 아담은 에덴의 주인이 아니었다. 섬기고 돌보는 청지기였다. 청지기(Steward)는 소유자(Owner)가 아니다. 청지기는 관리하고, 소유자는 차지한다. 아담에게 주어진 자리는 청지기였다. 그런데 아담은 소유자가 되려 했다. 이계 타락이다. 하워드 데이튼(Howard Dayton)이 세운 원칙이 그래서 단순하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다. 당신이 가진 돈도 시간도 다르지 않다. 그 주인은 당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당신은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내 것이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 하지만 맡은 것이라면? 주인의 뜻대로 써야 한다.
김동은 - 성경 66권으로 읽는 돈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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