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읽는 것도 바로 이 긴 역사 속에 있다. 우리는 베들레헴에서 시작하여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지나 골고다와 빈 무덤에 이르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때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제자들의 삶으로 이어졌고, 교회의 역사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었다. 누군가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고, 누군가는 용서를 통해 그분을 기억했으며, 누군가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면서 예수님의 길을 따랐다. 결국 예수님의 생애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한 인물을 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해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는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가. 나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희망하는가. 그리고 나는 예수님이 걸으셨던 사랑과 용서와 섬김의 길을 오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릴리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골고다의 십자가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다. 빈 무덤에서 시작된 부활의 소식 역시 단순히 오래된 종교적 전승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오늘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정태성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이제는 올 때까지 왔습니다. 어떻게 해도 죽을 것입니다. 죽을 바에야 숨어서 죽는 것보다 나 혼자 숨어서 개인적으로만 반대할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교회 안에서 ‘신사참배는 범죄 행위다’라고 각 교회에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경찰에 체포되고 죽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전쟁이 끝나고 해방 이후 대한교회의 재건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수양원을 설립하여 일본 치하에 타락된 목사들을 수양할 것. 둘째, 신학교를 설립하여 진리를 위해서 한국교회와 운명을 같이 할 목사를 양성할 것. 셋째, 전도인들을 길러서 교회를 설립할 것. 그런데 한상동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엄격하고 단호한 사람이었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무척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였다. 그가 교회쇄신운동을 전개할 때 수많은 목사와 장로, 평신도들이 그의 집을 방문해 교회의 사정을 상담했는데, 그는 서재에서 직접 차를 끓여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신학생들에게까지 언제나 존댓말을 썼고, 학생들에게까지 항상 ‘형님들’이라고 불렀다. 이 같은 자세는 은퇴 후까지도 계속되었다.
나삼진 – 한상동 평전
전도자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인생은 마치 장사를 하러 나간 장사꾼의 하루와 같다고 말합니다. 장사꾼이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그날 번 돈을 세어 얼마의 이윤을 남겼는지 계산하듯,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살아가다가 그분 앞에서 인생을 결산할 때가 반드시 온다고 말합니다. 그 결산의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이 주신 복 안에서 자족하고 즐겁게 살아온 인생은 의미 있고 행복한 ‘결산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받은 복보다 자신의 결핍에만 마음을 빼앗겨, 평생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불만족 속에서 세상의 성공과 쾌락만을 좇아 살아온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이 헛되었다고 고백하는 ‘파산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김성진 - 일생에 한 번은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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