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명 감당하라고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했어요. 중요한 것은 ‘사명’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자는 주님이 반드시 이끌어 내십니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예수께로 인도되는 지식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어, 하나님은 인정해. 하지만 예수는 안 믿어” 이러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 말입니다! 최고의 석학도 믿지 못한 예수를 내가 믿게 되었잖아요.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박해를 견뎌야 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받기도 해요. 그러나 여러분도 낙심하지 말고, 사도들과 같이 더 열심히 사명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대적들이 악을 행하면 우리는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인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명을 다하면 되는 것이에요. 대적보다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됩니다.
김양재 - 성령의 얼굴
성령 강림절에 대한 올바른 신학은 그러한 대중적 생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교회는 부활하신 분의 영에 의해 함께 부름을 받은 공동체이다. 이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그리고 마찬가지로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오라고 부른 것이다.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영어 단어 ‘ecclesiastical’[교회적]이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법원에 출두하라고 소환받은 자처럼 ‘불러내거나 소환된 자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지체들로 이루어진 몸으로 부름을 받는다. 우리 시대의 자유분방한 개인주의는 성령 강림절이 아니라 바벨을 표명하고, 이는 개인주의가 조장하는 극단적 분열과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모든 시간과 장소에 임재하는 부활하신 그분은 성령의 역사로 잘못 분리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자 하신다. 따라서 참여는 개인의 선택이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자체에 내재한 것이다. 개인이 아닌 교회가 기독교의 최소 단위이다.
로렌스 헐 스투키 – 교회력
기독교 스포츠신학을 탐구하려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의 탐구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지, 그 핵심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른 접근 방식들은 모두 불완전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스포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스포츠가 그 자체 외에는 다른 목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치 발레처럼 우아하게 스스로 서 있도록 허락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대함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것은 그저 우아한 피조물의 자유로운 표현이다. 예배와 스포츠는 어떤 의미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둘 다 삶의 필수품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 자유가 바로 이 둘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즉, 예배와 스포츠는 함께 안식일적 삶을 형상화한다..
링컨 하비 - 스포츠신학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