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나오미 앤더슨의 기고글인 'Z세대의 ‘부흥’, 단순한 열풍이 아닐 수 있는 3가지 신호'(3 signs Gen Z's 'revival' might be more than hype)를 9월 12알(현지시각) 게재했다.
나오미 앤더슨은 베리티 컬렉티브(Verity Collective)의 공동설립자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제가 무슨 대답을 하길 원하시나요?” 길거리 인터뷰 도중 한 청년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솔직한 대답이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당신이 믿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대본은 없었다. 카메라 한 대와 질문 하나,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스스로 답을 찾아가려는 한 청년이 있었을 뿐이다.
필자와 사역팀은 꽤 오랫동안 청년들과 진리와 정체성, 삶의 목적과 신앙,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대화를 나눠왔다. 대답은 사람마다, 도시마다 달랐다. 확신에 차서 답하는 이들도 있었고, 말을 이어가다가 스스로 생각을 바꾸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필자를 계속 놀라게 하는 것은 그들이 대화를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리를 뜨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누군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준 것 자체를 반가워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왜 요한복음 14장 6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선언이 오늘날에도 중요한지를 설명하면 그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필자가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이른바 ‘부흥(revival)’에 관한 논의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종교 이탈의 하락세가 멈추고 있다
최근 타임지(TIME)는 청년층 사이에서 종교적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을 조명했다. 그러나 기사에 인용된 연구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전국 단위 통계를 보면 아직 미국 내 기독교인 비율이나 교회 출석률이 뚜렷하게 반등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직할 필요가 있다. ‘부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실제로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한 근거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데이터의 다른 측면에는 눈여겨볼 만한 변화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종교와 거리를 두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는 이른바 ‘무종교층(nones)’이 세대가 젊어질수록 계속 증가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증가세가 이전만큼 가파르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종교 연구자 라이언 버지(Ryan Burge)가 분석한 2023년 Cooperative Election Study 자료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42%가 종교가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밀레니얼 세대와 같은 비율이었다.
이 수치 자체를 부흥의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종교 이탈이 계속 심화되던 오랜 흐름이 적어도 일정 부분 멈추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하락 곡선이 더 이상 급격히 내려가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2. Z세대는 영적인 변화 가능성에 더 열려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세대의 영적 개방성이다. 2026년 2월 글루(Gloo)와 바나 그룹(Barna Group)이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전체 성인의 29%가 가까운 미래에 영적 부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반면, Z세대에서는 그 비율이 38%로 더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것 역시 부흥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이 일어나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가 영적인 변화 가능성에 더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필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모습도 이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전국 규모의 설문조사는 교회 출석률이나 종교적 소속, 신앙에 관한 사람들의 답변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 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작은 대화까지 기록할 수는 없다.
만약 Z세대 안에서 영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면, 그 변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청년이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처음으로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일 수 있다. 기숙사에서,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에, 운동 연습 중에, 혹은 친구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권면한다.
어쩌면 이 세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복음 대화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대화는 교회 출석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3. 신앙이 일상 속 대화로 이동하고 있다
때로는 아주 작은 물건 하나가 복음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필자와 사역팀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중심으로 ‘146 무브먼트(146 Movement)’를 시작했다. ‘146’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팔찌는 이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팔찌를 배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축구 연습에 그것을 차고 나갔다.
한 팀 동료가 팔찌를 발견하고 물었다: “146이 무슨 뜻이야?” 그 질문 하나로 축구 연습장 한가운데서 예수님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다. 그 학생은 이미 146이라는 숫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생각해 둔 상태였다. 그래서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창한 무대도 없었고, 화려한 조명도 없었다. 마이크도 없었으며, 교회 행사의 일부도 아니었다. 그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던 한 청년과,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한 또 다른 청년이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부흥은 이런 모습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부흥은 언제나 숫자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영적 갱신이 언제나 군중의 규모나 행사 참석자 수로만 측정된 것은 아니다.
참된 회개가 나타나고, 기도가 회복되며,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열망이 새로워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신앙은 교회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교로 간다. 운동장으로 간다. 기숙사와 직장으로 간다. 친구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평범한 대화 안으로 스며든다.
로마서 10장 14절은 이렇게 묻는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지금 Z세대 가운데 행하고 계신 일 중 하나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에 대해 기꺼이 말하려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변화
정말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교회 안에서도 그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세례를 받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학생 모임이 활기를 띠며, 성경을 처음 펼쳐드는 젊은이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기뻐해야 한다.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세대가 있다면 당연히 감사하고 축하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영적 변화가 훨씬 덜 눈에 띄는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친구에게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 기꺼이 이야기하는 한 기독교인 학생 안에서 나타날 수 있다.
아직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 복음을 설명할 때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함께 기도해도 좋다고 마음을 여는 청년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친구 손목의 팔찌에 적힌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가 어느새 예수님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 십 대 청소년에게서도 시작될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은 전국 단위 설문조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출석률 그래프에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변화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부흥의 첫 신호는 거대한 집회장의 함성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당신이 믿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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