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스파이비
제니퍼 스파이비.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제니퍼 스파이비의 기고글인 '예레미야 33장 3절: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Jeremiah 33:3: What to do when God speaks a second time)을 최근 게재했다.

제니퍼 스파이비는 신앙과 일상의 순간들, 곧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을 특별한 은혜로 만나주시는 자리들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저자이자 강연자, 사역 멘토인 그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삶,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예레미야 33장 3절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이 구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이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개 이 말은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두 번째 기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도 그토록 너그러운가? 만약 하나님이 처음 우리에게 행하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우리는 기꺼이 그분께 '두 번째 기회'를 드리고자 하는가?

주님이 주신 말씀인데, 확신이 서지 않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필자의 삶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주 오래전, 필자는 성령께서 *"전투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 그 말씀을 듣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주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시고 필자가 혼자가 아님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귀띔해 주셨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는다.

한번은 주님께서 고향에서 13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사역지를 옮기라고 말씀하셨다. 오, 맙소사. 필자는 그 먼 길을 운전해 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참고로 필자는 미국 남부 출신이다. 남부 사람들의 '펑펑 우는 것(bawling)'은 그냥 우는 것보다 훨씬 요란하고 심각하다는 걸 믿어주길 바란다!).

최근에는 주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목회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는다.

아마 당신도 직면해야 했던 전투가 있었거나, 끝내야만 했던 관계, 혹은 견뎌야만 했던 시련이 있었을 것이다. 주님의 경고조차도 우리에게는 선물이다. 그분은 항상 우리의 유익을 위해 말씀하시며, 그분이 하시는 말씀 중 가치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성경을 볼 때 문맥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시간 관계상(혹은 글자 수 제한 때문에) 역사적 배경 설명을 건너뛰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깊이 들어가 보자. 필자는 이 역사 공부를 정말 좋아한다!

예레미야 32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님은 33장 3절만큼 고무적이지 않은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신다.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26-30).

이건 참으로 끔찍한 내용이다. 이제 33장 1절을 보자. 우리는 33장 3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두 번째로 임했다고? 정말인가? 예레미야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고, 여전히 포로 신세이며, 주님이 예고하셨던 바로 그 끔찍한 공격 아래 놓여 있었다. 솔직히 필자가 예레미야였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주님이 처음 하신 말씀도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두 번째로 찾아오신다니 별로 기대가 안 되네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겠는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3).

하지만 잠깐, 이게 끝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주님께 부르짖자, 환난 중에 있는 그에게 엄청난 격려의 말씀이 주어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33:4, 6-9).

주님이 '두 번째'로 찾아오셨을 때 예레미야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것은 필자에게도 엄청난 본보기가 된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레미야가 다른 어디로 갈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 위기 속에서 주님을 떠났더라면, 어디서 그 치유와 회복과 도움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이는 요한복음 6장 68절의 베드로를 떠올리게 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위기 속에서조차, 아니 위기 속이기 때문에 더더욱 주님 외에 다른 도움의 원천은 없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매 순간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주님이 당신에게 두 번째로(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로) 다가오시도록 마음을 내어드리자. 그것은 당신의 삶에 놀라운 보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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