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5–16절에서 바울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다시 분명하게 설명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보여주는 말씀이지만, 죄인 된 인간에게는 그 기준이 진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알면 알수록 죄가 더 선명해지고, 죄를 깨달을수록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더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바울에게 율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열심을 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열심은 그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을 더 깊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법은 죄를 드러내고, 죄가 드러나는 곳에는 심판의 진노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16절에서 그는 상속자가 되는 길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믿음 위에 세우신 이유는 그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굳게 서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상속이 율법의 행위에 달려 있다면 아무도 그 약속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은혜의 길이다.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인간의 공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구원은 내가 이룬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바울은 여기서 후손의 의미를 새롭게 밝힌다. 진정한 후손은 혈통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자들이 참된 후손이다. 아브라함의 약속은 한 민족 안에 갇힌 약속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모든 자에게 열려 있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구약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 약속의 복에 참여하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흘러온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확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한 시대의 죄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구원의 능력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그 후손에게 이어졌듯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은 믿음으로 그분께 속한 모든 자에게 임한다. 우리는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율법의 짐 아래에서 스스로 의로워지려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은혜에 속하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가.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우리를 살린다. 믿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상속자가 되는 것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셨으며, 믿는 모든 자에게 굳게 하셨다. 이 은혜를 붙드는 자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는 참된 상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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