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안과 자유, 그리고 신앙의 삶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금자탑이다. 그렇기에 6월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달이 아니라, 오늘이 있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내일을 다시 세워가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당신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의 일꾼들이 선출되었다. 어제 모처럼 시장에 나가 보니 새롭게 당선된 이들이 함께 시장을 돌며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러한 단합된 마음과 정신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감당한다면 앞으로 기대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는 첨단 산업 사회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얻은 한편, 고귀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있기도 하다.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뒤 여러 사람이 심판대에 서는 모습을 보았고, 전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오늘날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훗날 엄숙한 심판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당선된 이들은 국민과 시민을 위해 일하라고 선출된 사람들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정당하게 일했음에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하고, 실력이 있어도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권력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권력자들은 반드시 시대가 지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을 잡고 정치를 하는 것을 승리와 성공, 영광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 외의 사람들을 실패자나 패배자로 여기고, 심지어 자신을 위한 고용인이나 명령에 복종해야 할 부하처럼 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권력 의식 때문에 이 땅의 많은 군중이 억압받고 착취당했으며, 멸시와 천대를 당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 풍토 아래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뒤에서는 온갖 비판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두려워하는 척해야 했고, 싫어도 명령에 따라야 했으며, 갖은 아첨으로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결국 권세를 가진 자 앞에서 선거권자는 사라지고, 시민은 노예처럼 전락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에 대해 율곡 이이 선생은 “정치에는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일에는 성의껏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에서 의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시대의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좌우편 자리를 부탁했던 세베대의 아내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또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중요한 시기에 당선된 이들은 한결같이 시민과 국민을 위해 정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을 위한 정치는 무엇인가.
첫째,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전쟁은 국민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군중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간디가 말한 것처럼 전쟁은 “절대 악”이다.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전쟁은 군주들의 장사일 수 있다. 군주들이 전쟁을 선포하면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그러므로 베이컨은 “평화 시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매장하지만, 전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매장한다”고까지 말했다. 이번에 선출된 이들이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기를 기대한다.
둘째, 국민을 위한 정치는 사회 정의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다.
사회 정의가 무너진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립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는 “오 하나님, 정의가 힘을 지배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사회의 안정과 균형만을 유지하려는 정치가 오히려 사회를 타산적이고 차갑게 만들 수 있음을 지적했다. 종교는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훈훈한 사랑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만이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길이다.
의로운 사회에서만 참된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복종조차 자유가 될 수 있다. 성공도 좋고 부도 좋은 것이지만, 정의는 그 모든 것보다 귀하다. 그러나 흔히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불의를 강요한다.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 무력으로 사회를 지배하면서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셋째, 국민을 위한 정치는 국민의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는 정치여야 한다.
기쁨을 잃어버린 자녀에게서 효도를 기대하기 어렵고, 기쁨을 잃어버린 학생에게서 충실한 공부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기쁨을 잃어버린 직원에게서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을 제압할 법을 만들기 전에, 국민이 기대하고 신뢰할 만한 행정 개혁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경찰을 출동시키는 일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시위대가 왜 불만을 표하는지 찾아내고,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정치가 새롭게 선출된 이들의 마음에 심어지고 실천되기를 바란다.
한국 기독교, 특히 장로교는 여러 분파와 교파로 갈라져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가 겪는 아픔은 이미 한계에 이른 실정이다. 도시교회는 농촌교회를 돌아보는 따뜻함을 회복해야 하며, 정치인들의 협력 또한 요구된다.
새롭게 선출된 이들에게 권한다. 국민을 위해 세움 받았다는 의식을 갖기 바란다. 국민을 위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마지막에는 국민에게 심판받아야 한다는 신념과 양심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충성했을 때 절대자 앞에서 영광이 있다는 믿음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나라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여와 야가 하나 되고, 남과 북이 하나 되며, 영남과 호남, 가진 자와 없는 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대동의 세계가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울려 퍼지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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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