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한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어떤 형상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제작하여 숭배하는 것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이나 순교자,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신앙과 헌신을 교육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기념물은 우상숭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치원성결교회에는 신앙의 순결을 지키다 순교한 김동훈 전도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철원성결교회 순교기념관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박봉진 목사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총회 역사홍보관에도 박봉진 목사의 흉상이 있으며, 문준경순교기념관에는 문준경 전도사의 전신상이 세워져 있다. 누구도 이 조형물들을 예배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신앙의 유산을 기억하게 하는 교육적 상징물일 뿐이다.
신학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와 교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의 동상과 흉상을 세워 창립 정신과 신앙 전통을 계승하도록 하고 있다. 감리교 계통 대학들에는 존 웨슬리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미국 애즈베리신학교에도 웨슬리 동상이 있다. 나사렛대학교에는 정남수 목사의 흉상이 세워져 학교의 신앙적 뿌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일반 대학과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연세대학교에는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이, 이화여자대학교에는 김활란 박사의 동상이, 가천대학교에는 설립자 이길여 총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좌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국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전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링컨 기념관이 세워져 자유와 인권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이처럼 동상과 흉상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다. 그것은 신격화가 아니라 계승이며, 예배가 아니라 교육이다. 인간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삶의 본보기를 남기기 위한 역사적 장치이다.
2026년 5월 29일 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개교 115주년과 존 웨슬리 탄생 323주년, 회심 288주년을 기념하여 웨슬리 흉상을 제막하였다. 이는 웨슬리를 숭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성결교회의 신학적 뿌리와 영적 유산을 기억하고, 그의 복음적 열정과 성결운동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함이다.
흉상은 말이 없다. 그러나 말없는 스승처럼 후배들에게 질문한다. “너는 어떤 믿음을 남길 것인가?” “너는 복음을 위해 무엇을 헌신할 것인가?” “너는 다음 세대에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그러므로 흉상은 우상이 아니다. 흉상은 기억이며, 교육이며, 계승이다.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게 하는 말없는 스승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브리서 13: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린도전서 11:1)
양기성 교수(Ph.D., Hon.Th.D.)
서울신학대학교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웨슬리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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