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호가 피격된 지 열흘이 지났다. 모든 정황은 이란을 가리키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스스로 공격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건 당일부터 "이란의 짓"이라고 못 박았다. 드론 이중 타격(double-tap) 방식은 IRGC의 전형적인 교전 양식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열흘 내내 "미상 비행체"라는 표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세 가지 구조적 딜레마가 작동한다.
이유 ① 호르무즈에 발 묶인 한국 선박 26척
가장 즉각적이고 실물적인 제약은 현재 호르무즈 해역과 그 인근에 발이 묶인 한국 국적·한국 해운사 운용 선박 26척이다. 이란·미국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된 이후 상당수 선박이 오만해·아라비아해 쪽으로 우회로를 택하고 있지만, 이미 호르무즈 안쪽에 들어와 있거나 인근 항구에 정박 중인 한국 선박은 이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한국이 이란을 공식 공격 주체로 특정하고 외교적 항의나 제재에 나설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내 한국 선박을 억류하거나 추가 타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이 정부 안에 깔려 있다.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케미호를 억류했을 당시 한국은 70일 가까이 외교적으로 끌려다닌 전례가 있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란을 공개적으로 자극했다가 선박 26척이 인질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유 ② 미국의 호르무즈 작전 참여 압박
두 번째 딜레마는 미국의 해양자유구상(Maritime Freedom Construct, MFC) 참여 압박이다. 미국은 나무호 사건 이후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상 안전 작전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군함이 이미 중동 해역으로 이동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오늘 외통위에서 "미국에 단계적 기여를 검토하겠다고 전달했다"고 밝힌 것도 이 압박에 대한 간접적 응답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란을 공식 특정하는 순간, MFC 참여 압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가 된다. 공격 주체를 확인했음에도 해상 작전에 불참하면 동맹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란과의 전면적 외교 단절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낳는다. 한국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 특정을 최대한 늦추면서 물밑 외교 채널을 통해 재발 방지 확약을 받는 것이 최선의 출구"라는 견해가 나온다. 반면 야당에서는 "이런 소극적 태도가 한국을 '만만한 표적'으로 만든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유 ③ 트럼프 방중 타이밍 — 미중회담이 '변수'이자 '기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 회담에서 이란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뉴시스
세 번째이자 가장 미묘한 변수는 타이밍이다. 오늘(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트럼프는 출국 전 "시진핑과 이란 문제를 길게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협상 구도에 중국이 중재자로 들어올 가능성이 이날 회담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미중회담 이전에 이란을 공식 특정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불필요한 패를 미리 소진하는 셈이다. 미중회담 결과에 따라 이란과의 긴장 국면이 급속히 완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미·이란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이 먼저 이란을 자극하면, 어느 쪽 시나리오가 전개되더라도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오늘 회담 결과를 확인한 뒤 이란 대응 수위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내부 방침을 정리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
전문가 진단 — "신중론은 이해되나, '골든타임'은 지났다"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은 정부의 신중론을 일부 이해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 외교안보 연구소 관계자는 "선박 26척과 교민 안전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은 현실적으로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공격 주체 특정을 무한정 미루면 이란에 '한국은 쳐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1991년 걸프전 당시 한국이 파병 없이 지나치게 '눈치 외교'를 했다가 외교적 위신을 잃은 선례가 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의 선택지가 '이란 특정 후 강경 대응'과 '무한 침묵' 두 가지만 있는 것처럼 논의되지만, 그 사이에는 비공개 항의·잠정 제재 예고·조건부 양자 협상 요청 등 다양한 중간 옵션이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여부가 아니라 대응 로드맵 설계"라고 강조했다. 오늘 외통위는 바로 그 로드맵을 정부가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 딜레마 | 이란 특정 시 발생하는 문제 | 계속 유보 시 발생하는 문제 |
|---|---|---|
| 선박 26척 | 이란의 억류·추가 피격 가능성 | '만만한 표적' 신호, 재발 방지 실패 |
| 美 작전 압박 | MFC 참여 당위성 → 이란과 전면 단절 | 동맹 신뢰성 훼손, 한미 관계 냉각 |
| 미중회담 | 협상 주도권 상실, 외교 옵션 소진 | 국내 정치 압박, 野 공세 심화 |
자료: 외교안보 전문가 인터뷰 및 국내외 보도 취합, 본지 정리.
핵심 정리: 한국 정부가 이란을 특정 못 하는 3중 구조
- 호르무즈 발 묶인 한국 선박 26척 — 이란 자극 시 억류·추가 피격 우려.
- 미국의 해양자유구상(MFC) 참여 압박 — 특정 즉시 참여 당위 생겨 이란과 전면 단절.
- 트럼프-시진핑 베이징 회담 타이밍 — 미중회담 결과 확인 전 패 소진 부담.
- 결론: 정부는 세 가지 변수가 정리될 때까지 '유보'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 높음.
자료 출처
본 기사는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 인터뷰를 취합해 작성했습니다. 본 기사는 분석 목적의 정보 제공이며, 정부 방침은 상황 전개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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