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속에서 시작된 열등감
열등감은 대개 비교라는 잘못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 나는 키가 작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머니가 이웃집에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가장 싫어했다.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 친구 집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왜소한 외모 때문에 자주 따돌림을 당했다. 조회 시간이 되면 늘 앞줄에 서야 했고, 그 때문에 힘센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열등감을 품고 살아왔다. 공부마저 뒤처지다 보니 열등감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왜 나는 남들처럼 키가 크지 못할까?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할까?” 하며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장면’과 나 자신을 비교하기 일쑤였다.
◈성경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시선
그러던 어느 날, 고향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성경 속 인물들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모세와 히브리 산파들, 기생 라합, 여호수아, 믿음의 용사 기드온, 불행을 극복한 룻, 믿음의 어머니 한나, 그리고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지녔던 삼손의 이야기를 배우면서 나는 열등감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윗 같은 훌륭한 인물에게도 부족함과 부끄러운 면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비록 나에게도 부족함이 있지만,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의를 위해 싸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골리앗을 물리친 것처럼 나 역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게 되었다.
또 삼손처럼 강한 사람에게도 연약함과 부끄러운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며,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을 단순한 감정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열등감을 우월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나 역시 그 이후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밤을 새우다시피 책을 읽으며 배움을 채워 나갔다.
◈열등감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열등감은 오히려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만일 열등감이 없었다면 나는 고여 있는 물처럼 정체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열등감을 완전히 없애기 위한 노력은 자신의 그림자를 잘라내려는 것처럼 헛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그림자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비교의 대상을 타인에게서 어제의 나 자신으로 옮기기 시작했을 때, 열등감은 더 이상 나를 갉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조력자가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부족하구나. 그렇다면 더 채울 공간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열등감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그림자는 내가 지금 밝은 빛을 향해 걷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학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고,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을 훈련했다. 과거에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내가 이제는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게 되었고, 부끄러움은 이른 봄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는 목회자가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열등감이 부모 탓이나 환경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열등감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빈 마음을 은혜로 채워 가고 싶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며 기도 가운데 전진하기를 다짐하고 있다.
◈바흐에게서 배우는 믿음과 인내
여기서 나는 열등감을 극복한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 S. Bach)이다.
바흐는 1685년 독일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홉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형의 집에서 자라야 했다. 이후 열다섯 살이 되어 미카엘 학교 합창단에 소프라노 가수로 들어가게 된다.
1704년, 열아홉 살이 된 바흐는 아른슈타트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가 되었다. 1707년 결혼했지만 아내와 사별했고, 이후 재혼을 하게 된다.
그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로 성실하게 사역했지만,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비난과 모함 속에서 많은 고통과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과 음악이었다.
바흐는 3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지만, 살아생전에는 단 한 곡만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그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1750년, 65세의 나이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 이후에도 칸타타를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았던 불굴의 음악가이자 믿음의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도 열등감을 극복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일에 깊은 흥미를 느낀다.
◈낙심하지 않는 믿음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고난이 다가와도 쉽게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무너지고 기운이 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누구나 고난을 당하면 희망을 잃기 쉽다.
나에게도 고난의 시간은 있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 원로목사 추대를 반대하는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도시목회의 길이 열렸고, 오늘의 다문화선교센터를 운영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난으로 인해 우리의 겉사람은 쇠하여질 수 있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겉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 가기 마련이다.
나는 요즘 돌사진과 20대 시절 사진,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며 가장 화려했던 순간의 사진들을 바라보곤 한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겉사람이 점점 낡아져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속사람만큼은 느리더라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앙은 부귀영화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보이는 세계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 사랑과 정의를 바라보며 기뻐하는 삶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부족함을 채워 가며
오늘도 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전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다문화센터에 오는 외국인들과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해 외국어와 고전을 배우며 새로운 지혜를 얻고자 노력한다.
나의 속사람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지나온 목회의 시간을 돌아보면, 여전히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남은 삶도 부지런히 달려가고자 한다.
참된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끝까지 자신을 세워 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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