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
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의 기고글인 ‘교황 레오 14세의 전쟁·이란·기도에 대한 견해: 내가 동의하는 점과 동의하지 않는 점’(Pope Leo XIV on war, Iran, and the power of prayer. Where I agree and disagree)을 4월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 중 하나인 뉴 시즌 교회(New Season)의 담임목사이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전미 히스패닉 기독교 지도자 연합(NHCLC)의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교황 레오 14세가 지난달 한 발언은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검토하며, 정직하게 응답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말이다.

역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인 그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수만 명 앞에서 “예수님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갈등 종식을 촉구했고,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이 도구화되는 것을 경고했으며, 평화를 위해 외쳤다.

이 가운데 여러 지점에서 필자는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폭탄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려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담대하게 말할 책임이 있다.

시편은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고 말한다. 권력도 아니고 군사적 우위도 아니며 승리도 아니다. 의와 공의, 사랑과 성실이 하나님의 통치의 기초다. 이 점에서 교황의 문제 제기는 옳다.

예수께서도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복 있는 자는 강한 자도, 승리하는 자도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다. 전쟁과 희생이 커져가는 시대, 특히 중동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평안하게 성주간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이런 진리를 공적 자리에서 선포하는 목소리는 필요하다. 교황은 그 플랫폼을 사용했다.

그러나 대화는 거기서 멈출 수 없다.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는 표현은 성경적으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존중을 담아 말하자면, 이 표현은 성경이 허락하는 범위를 넘어선 측면이 있다. 성경은 평화주의 선언문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 가운데 기도했고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윗은 전사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불렸다. 그는 전쟁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응답을 받았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앞에서 엎드렸고 하늘의 응답을 들었다. 시편 곳곳에도 전쟁과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가득하다.

시편 91편은 하나님이 부르짖는 자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에 군인을 제외한다는 단서는 없다.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귀를 닫으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도 세계 곳곳의 기지와 전장에서 많은 젊은 군인들이 머리를 숙이고 기도한다. 전쟁을 미화하려고가 아니라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곁의 동료를 지켜달라고, 두려움의 순간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들에게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은 너희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과는 다르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성경 속 군인들을 거절이 아니라 임재로 만나셨다.

물론 책망받아야 할 대상은 있다. 신앙을 무기화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군사적 야망에 이용하는 정치 권력이다. 특히 반유대주의적이고 적대적인 이란 지도부가 군사 행동을 신적 사명처럼 포장해 온 점은 교황의 예언자적 경고가 향해야 할 지점이다. 그것은 정당한 비판이다.

그러나 신앙을 악용하는 지도자를 책망하는 것과 전쟁 속에서 기도하는 병사를 정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같은 언어로 다뤄질 일이 아니다. 의 없는 자비는 감상주의가 되고, 자비 없는 정의는 폭력이 된다.

성경은 둘 다 붙들라고 말한다. 로마서 13장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통치자들은 국민을 보호하고 지킬 책임을 맡은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방어와 평화 추구는 단순한 정치 계산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평화를 외치되 섬기는 이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정치 권력에 진실을 말하되 복음을 정치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수많은 목소리가 아니라 화해로 이끄는 하나 된 증언을 내는 것이다.

이 순간 필요한 응답은 멀리서의 정죄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는 참여다. 신문 헤드라인은 만들지 못해도 한 영혼의 마음을 바꾸는 목회적 대화다. 그것이 화평케 하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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