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리치 목사
마크 크리치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제퍼슨 성경과 빈 무덤: 부활은 결코 묻혀 있을 수 없는 이유'(The Jefferson Bible vs. the empty tomb: Why the resurrection won’t stay buried)를 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성에 더 잘 맞도록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용하지만 의도적이었고, 그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뛰어난 지성과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그는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을 면도칼로 잘라내어 자신만의 복음서를 만들었다. 기적의 이야기들은 제거되었고 초자연적 요소들도 사라졌다. 그 결과 남은 예수의 모습은 위대한 도덕 교사였지만, 본래의 모습보다 크게 축소된 존재였다.

제퍼슨의 기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그들이 예수를 거기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았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난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뒤, 미국 의회는 이 책을 인쇄해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성경으로서가 아니라 제퍼슨의 종교적 사상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였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분명하다. 부활이 제거된 기독교의 한 형태가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칼이라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묻혀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본문에서 부활을 지울 수는 있어도, 역사 속에서 지울 수는 없다.

약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주장은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신화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선포된 메시지로 존재해 왔다. 이 주장은 목격자들의 증언 위에 세워졌고, 빈 무덤이라는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의심과 두려움 속에 있던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게 된 사건으로 입증되었다.

만약 예수가 살아나지 않았다면, 제퍼슨이 이야기의 끝을 무덤에서 마무리한 것은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다면, 제퍼슨의 이야기는 단순히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증거는 우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반박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반박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호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증인들, 회의적인 권력자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 의해 검토되었다. 그러나 증거를 자세히 살펴볼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자연적인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먼저 무덤 자체를 보자. 예수의 시신은 잘 알려진 무덤에 안치되었고, 큰 돌로 봉해졌으며 경비병들의 감시 아래 있었다. 무덤은 훼손되기 쉬운 상태로 방치된 것이 아니었다. 공식적인 봉인이 이루어졌고 숙련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무덤은 비어 있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만 주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기 반대자들조차 이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시신이 여전히 무덤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시점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흩어져 숨어 있었고, 무장한 병사들을 따돌리고 봉인을 깨뜨려 시신을 훔쳐 갈 만큼 조직적인 행동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거짓을 위해 평생 고통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음은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부활은 한 사람의 개인적 체험이나 환상에 근거해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증언되었다. 그들은 예수와 대화했고, 예수를 만졌으며, 함께 음식을 먹었다. 사도 바울은 한 번에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고 기록하며, 그 중 상당수가 당시에도 살아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는 공개적인 초청과 같았다.

환각은 집단적으로 동일하게 경험되지 않는다. 또한 환각은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제자들의 변화다. 부활 이전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숨어 있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 그들은 예수가 살아났음을 담대히 선포했고, 많은 이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했다. 사람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것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다.

제자들을 변화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부활이다.

회의론자들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의 사역 당시에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 이후 그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고 결국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또한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 역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증언한 이후 가장 열정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따라서 사람은 거짓이라고 확신하는 메시지를 위해 자신의 명예와 안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탄생 역시 중요한 요소다. 기독교는 먼 지역에서 서서히 발전한 종교가 아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심 메시지는 철학도 윤리도 아니라 단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가 살아나셨다.” 이 메시지는 종교적, 정치적 반대 속에서도 빠르게 확산되었고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므로 거짓은 이러한 운동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복음서 기록 역시 진정성을 보여 준다. 당시 사회에서 증언의 신뢰도가 낮게 여겨졌던 여성들이 첫 목격자로 등장하며, 제자들의 두려움과 의심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꾸며낸 전설이 아니라 실제 사건의 흔적과 더 가깝다.

빈 무덤 목격자들의 증언 제자들의 변화 회의론자들의 회심 교회의 탄생과 지속, 이 모든 요소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 검토할 문제만이 아니다.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이기도 하다.

성경은 부활을 선택 가능한 교리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의 중심에 놓여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단순히 기적 하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린도전서 15:17).

만약 그리스도가 살아나지 않았다면 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죽음은 여전히 권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믿음은 무너지고 소망은 사라지며 구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실제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는 선언이다. 죄의 값이 완전히 지불되었고 죽음이 패배했으며 영원한 생명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복음의 메시지를 마주하는 사람은 결단해야 한다. 단순히 예수를 존경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단순히 역사적 증거를 연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예수를 위대한 도덕 교사로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죄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분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신뢰해야 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능력이 오늘날 믿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며 장차 올 부활을 보장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한 군목이 야외 훈련에 참여한 군인들과 함께 밤을 보낸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비가 얼어붙으면서 아침이 되자 병사들은 눈과 얼음에 덮인 채 마치 무덤처럼 보였다.

군목이 들판을 바라보았을 때 마치 공동묘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팔 소리가 울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얼어붙은 눈 더미가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고 병사들이 일어나 서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마치 부활을 보는 것과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무덤에 머물러 있다면 세상은 희망 없는 공동묘지와 같을 것이다.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면 무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라고 말씀하셨다.

제퍼슨은 돌 앞에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그 돌은 예수를 가두어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더 큰 나팔 소리가 울릴 때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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