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과 하나님의 뜻
도서 「나의 선택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선택하는 일은 마치 해적 통아저씨 게임 같아 보입니다. 분명히 맞는 길과 틀린 길이 있으나 단서는 불분명한 복불복 게임입니다. 막대기를 하나씩 통에 꽂아 보다가 맞으면 다행이고, 맞지 않은 구멍을 택하여 통아저씨가 튀어나오면 낭패인 것이지요. 기도 중에 든 확신에 ‘하나님 뜻’이라든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등의 표현을 쓰며 그분의 권위를 은근슬쩍 빙자하면 안 됩니다. 그냥 “기도 중에 자매님과 사귀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확하고 정직합니다.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는 길이라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악한’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좀 덜 적합한 길일 뿐입니다.

이재욱 - 나의 선택과 하나님의 뜻

신앙은 왜 대물림되지 않는가
도서 「신앙은 왜 대물림되지 않는가」

부모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잘됨’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단지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이 진짜 잘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눈물의 방향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지금의 위로를 넘어서 영원의 관점에서 자녀를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결국 부모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자녀의 영혼이 문드러지는 혹독한 시간 속에서도 그 곁을 온전히 지켜 내지 못하는 부모의 부재,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아픈 한계입니다. 만일 요셉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마리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혼자 서 있다는 감각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서야 합니다. 배우자가 미지근하다고 해서, 서운함이 크다고 해서, 나까지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녀 곁에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서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눈물 섞인 고백입니다.

송희진, 우지연 - 신앙은 왜 대물림되지 않는가

다시 읽는 복음
도서 「다시 읽는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고치기 위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온전하게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온전한 관계 회복의 상태를 성경에서는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삼위일체의 이러한 역동적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입니다. 이는 ‘상호 내재’ 또는 ‘서로를 안에 품음’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 위격이 서로를 열어주고, 공간을 내어주며, 함께 거하며, 하나로 움직이는 관계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한 일치와 사랑의 친교를 나누십니다. 그들은 각자에게 서로를 열어줍니다. 그리하여 공간을 내어줍니다. 삼위일체는 스스로 주체이면서도 ‘너’를 위해 ‘나’를 내어줍니다.

모중현 - 다시 읽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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