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 텔알하와 지역. 그날의 공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상의 균형은 무너졌다. 총성이 멀리서 시작되어 점점 가까워졌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전화를 걸었다. 숨이 가빠지는 가운데,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의지로 말했다.

“저에게 총을 쏘고 있어요. 제발 데리러 와주세요.”

이 한 목소리는 단순한 구조 요청을 넘어, 공포와 외로움,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 뒤섞인 절규였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그 순간을 길게 응시한다. 그 침묵의 시간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오기를, 이 모든 공포를 멈춰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시간이었다.

구조 요청을 받은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는 즉시 움직였다. 지도 위에서 보면 불과 8분 거리였다. 그 짧은 거리 속에 생명과 죽음이 갈릴 수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서둘렀고, 마음은 이미 현장에 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정’이라는 절차가 필요했다. 승인, 확인, 통보. 그 사이에서 시간은 조금씩, 그러나 치명적으로 흘러갔다. 아이는 결국 죽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멈춰 서게 된다. 그 다섯 시간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누구를 위한 시간이었는가. 규정의 시간이었는가, 아니면 기다리는 생명의 시간이었는가.

이 사건은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는 문제로 환원되기 어렵다. 이스라엘군의 군사적 판단은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민간인 보호라는 국제적 원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지 우리는 묻게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정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서부터는 반드시 멈춰야 하는가.

세계는 이 비극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어린 생명의 보호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도적 책임을 강조한다. 일부 국가는 여전히 안보와 자위권의 논리를 앞세운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 사건을 공유하며 분노와 연대를 표출하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깊은 무력감도 경험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는, 알고 있으나 침묵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과 입장 이전에, 우리는 다시 그 목소리로 돌아가야 한다.

“제발 데리러 와주세요.”

이 말은 단순한 구조 요청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시 들려야 한다. 제발, 더 이상 싸우지 말아 달라는 호소. 제발, 서로를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 제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라는 마지막 요청.

문명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가장 약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여섯 살 아이의 시간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세계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분명하다. 생명은 어떤 명분보다 앞서야 한다는 사실, 제도와 절차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라는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도 전쟁 중에 어떤 명분도 제도와 절차도 지켜지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종전과 협상을 외치고 있지만 묵묵부답일 뿐 전쟁의 시간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생각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도덕적 책임을 잊은 문명은 가장 잔인해진다”고 경고했다.

한 아이의 목소리는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외침이 남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부름 앞에서, 여전히 응답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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