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 11:1-15)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아니면 속아서 지배당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사이비 종교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2천년 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이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오히려 “잘 용납한다”고 질책한다(고후 11:4). 문제는 이들이 억지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미혹(πλάνη)이다. 미혹은 강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도 아니다. 미혹, 가스라이팅은 자유를 가장한 지배이다.
사도 바울은 미혹의 근원을 이렇게 진단한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고전 11:13-15). 미혹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탄은 결코 악한 모습으로 오지 않고 오히려 더 빛나고, 더 영적이고, 더 헌신적인 천사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속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법인 성경의 판단 기준은 “겉모습”이 아니라 “진리”이다. 비록 겉모습은 광명의 천사처럼 보일지라도 진리이신 예수, 진리의 영인 보혜사, 참된 복음을 변질시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사망으로 이끄는 미혹이다. 그러나 이것을 분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신앙심이 높은 우리 사회에도 갖가지 이단 사이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종교의 이름으로 경제적 착취, 성적 학대, 가정파괴를 일삼고 때로는 세월호 사건, 코로나 팬데믹 확산 등 사회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문제는 가이사의 법, 우리 법체계는 이러한 미혹, 가스라이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법은 종교의 자유를 매우 넓게 인정한다. 헌금 갈취도, 헌신을 가장한 인권유린도,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조차 겉으로 자발적으로 보이면 쉽게 개입하지 않는다. 성경은 “미혹”, 가스라이팅을 죄로 규정하지만, 법은 “자발성”을 전제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신천지를 상대로 한 청춘반환소송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천지는 모략전도, 즉 신천지 신도임을 숨기고 기존 교회 교인이나 대학 동아리 회원, 일반적인 성경공부 모임의 일원인 것처럼 행세하며 거리에서 종교 관련 설문조사를 하거나, ‘성경공부’, ‘심리 치유’, ‘취업 컨설팅’ 등을 내세워 접근한 후 신천지 교리로 유도한다. 일단 포섭이 되면 신천지임을 밝히는데 그때는 이미 발을 깊숙이 담근 터라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가정이 파탄 나고 일상생활이 무너진 뒤에야 가까스로 신천지를 나온 교인들이 신천지 교회를 상대로 그동안 당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신천지에 뺴앗긴 청춘을 돌려달라는 이른바 '청춘반환 소송'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모략전도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이 신천지예수교 소속이고 그 교리를 배운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추가적인 교리 교육을 받고 입교하여 신도로서 활동하는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신천지의 선교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을 잃거나 원고들의 종교선택의 자유를 상실시키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판결을 하였다. "잘못은 있지만 배상 책임은 없다"는 이 판결의 논리는 미혹, 가스라이팅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셈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 간다. 사람이 전 재산을 바치고, 가족과 단절하고, 삶을 파괴하는 선택을 했다면 그것은 자유인가, 아니면 지배인가.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자유처럼 보일지라도, 판단능력이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지배이다”. 그래서 About-Picard Law를 제정하여 반복적 심리적 압박으로 개인의 판단능력 약화시키는 가스라이팅을 처벌하고 필요한 경우 단체해산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sectes(컬트)” 문제가 급증하여 집단 자살, 아동 학대, 재산 착취 사건 발생한 데 따른 법적 대응이다.
최근 신천지와 통일교의 정교유착 비리가 정치적 문제로 떠오르자 반사회적 종교단체의 해산을 겨냥한 정교유착방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은 모든 법인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민법 개정안의 형식을 취하고, 법인 해산사유에 정교분리,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정치적 사안을 명시하면서도 정작 사이비 종교의 가장 큰 폐해인 가스라이팅에 대한 규율이 빠져있다. 그래서 반사회적 종교의 폐해 방지라는 타당한 입법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계로부터 종교해산법이라는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그사이 사이비 종교는 정통교회의 종교 자유 뒤에 숨어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제 우리 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미 가정폭력법이나 스토킹처벌법을 통해 “반복적 영향력 행사” 자체를 규제하는 법을 도입한 바 있다. 이 흐름을 확장하여 미혹, 가스라이팅이라는 과정 자체를 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과 그의 일꾼들이 미혹, 가스라이팅을 수단으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그 뿌리를 잘라내는 입법 처방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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