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관하여 분명하게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무력하여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구원은 내가 성취하거나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관한 한 우리는 전적으로 무기력하다. 우리가 가진 힘과 자원으로는 구원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없다. …특히 죄에 관한 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무력하다. 따라서 구원은 자신의 힘으로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곤궁에 처한 나를 힘 있는 누군가가 건져내주는 것이다. 그렇다! 구원은 은혜로 마련하신 것을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받는 것’이다. 구원의 근거는 절대 우리에게서 난 것이 될 수 없다. 구원의 출처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있다. 혹여나 내가 열심히 무엇을 이루어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면 이것은 철저한 착각이고 오해이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태초부터 작정하시고 이루시며 각 개인에게 적용되도록 역사하신 신적 선물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삼위 하나님은 구속의 언약 안에서 함께 역사하셨다.
양형주 -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부활절이 돌아올 때마다 구원의 '되풀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덤조차 막지 못했던, 우리를 찾기 위해 '살아' 돌아오신 주의 사랑 덕분에 끝없이 반복될 용서와 회복에 대해서도 역시. 세상의 주인에게 마련된 편하고 반듯한 길에서 기꺼이 '벗어나' 우리를 찾으러 오신 주님의 손에 이끌려 계속해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믿음의 여정 아닐까 싶다. 모호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고되고 피로한 나날 가운테 수많은 걸림돌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말씀을 빼앗으려 들지만, 보이지 않음에도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붙잡고 계속해서 걸어가다 보면 우리 또한 이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계적 도덕성이나 의무감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곧게 뻗은 도로에서 벗어나 온갖 낮은 곳들을 찾아 들어간다면, 그분이 터 주시는 새로운 오솔길을 따라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김승은, 김희진 – 영상이몽
비교의 시선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만, 부르심의 시선은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다른 사람의 빛을 질투하지 않고, 내게 주신 은혜의 빛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자라난다. 모든 사람과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배움의 교실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좋은 공동체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관념이 아닌 실천과 경험으로 드러나는 곳, 그곳이 진짜 공동체다. 오늘 나는 과거의 상처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붙잡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바로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이우식 - 햇살이 비치는 한 먼지도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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