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재판소원’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겉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다시 뒤집는 ‘사실상 4심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법조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은 공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되, 법원의 재판은 예외로 규정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1997년 12월과 2022년 6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취소한 전례가 있다. 당시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수용하지 않자, 헌재가 이를 무효화하며 양 기관 간 권한 갈등이 불거졌다.
이처럼 사법기관 간 오랜 갈등의 불씨는 최근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다시 타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1일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같은 달 초부터 관련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했으며, 현재 국회에는 최소 5건 이상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 중인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사법개혁 공세를 강화해온 점을 고려할 때, 재판소원이 사법개혁안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재판소원을 찬성하는 측은 법원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 해석을 내릴 경우, 헌재가 이를 바로잡을 수 있어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폭넓게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법원이 이를 따르지 않아 사건 당사자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헌재 역시 최근 들어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5~6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호하기 위해 재판소원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나온 유사 입장이다. 다만 헌재는 재판소원의 남용 가능성을 우려하며, 확정판결에 한정해 적용하고 재심이나 환송심 등 후속 절차는 입법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법원의 판단에 개입할 경우 헌법 제101조 1항의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원칙을 위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령 해석의 최종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대법원에 있다는 것이 사법부 내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천대엽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은 지난 5월 국회에서 “재판소원은 현행 헌법 체계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헌법 규정에 반하는 제도”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사법권 독립과 권력분립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무적인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헌재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지난해 기준 약 725일에 달한다. 이미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재판소원까지 추가될 경우, 심리 부담이 폭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전체 사건 중 82.5%,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94.7%가 재판소원 사건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판소원을 섣불리 도입하기보다 충분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만은 2019년 재판소원을 도입하면서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헌법재판관 증원 등 제도적 정비를 병행했다. 한국 역시 이와 같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제4심제’로 변질될 경우, 오히려 국민의 법적 안정성과 사법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권한 충돌이 심화될 경우, 사법체계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추석 연휴 이후 사법개혁안을 확정하고 입법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재판소원 도입 여부는 이번 개혁안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