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아놀드 작가
조슈아 아놀드 작가. ©washingtonstand.com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슈아 아놀드 작가의 기고글인 ‘우크라이나 난민, 냉혹하게 살해당하다: 근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Ukrainian refugee, murdered in cold blood: What was the root cause?)를 1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조슈아 아놀드 작가는 워싱턴 스탠드의 선임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와 논평에 모두 기여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들에서 법 집행을 강화하려는 가운데, 충격적인 대중교통 살인 사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22일, 젊은 우크라이나 난민 이리나 자리츠카(Iryna Zarutska)는 샬럿시의 통근 열차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정신 질환 병력과 긴 전과 기록을 가진 후드티 차림의 한 흑인 남성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이 잔혹한 사건은 범죄 해결책뿐 아니라 범죄의 근본 원인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샬럿 시장 바이 라일스(Vi Lyles, 민주당)는 이렇게 주장했다. “홈리스 문제나 정신 건강과 같은 사안은 단속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신적 어려움이나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악마화하기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역 사회 전반에서 근본 원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 발언은 즉각 보수 진영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라일스 시장이 문제를 범죄가 아닌 사회적 병리의 부산물로만 규정함으로써 실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모든 홈리스와 정신질환자를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내셔널 리뷰의 찰리 쿠크는 “그가 거리에 있지 않고 감옥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권위자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이번 살인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글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라일스 시장이 언급한 ‘근본 원인’ 문제를 성경적으로 짚어본다. 그녀의 발언이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더라도, 더 깊은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의 2,000년 전, 사도 야고보는 성령의 감동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지고 답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4:1).

현대 서구 문화의 지배적 철학인 ‘표현적 개인주의’는 모든 의미를 개인의 내적 자아, 특히 감정에서 찾는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성경적 진단과 어느 정도 맞닿는다. 인간의 갈등과 고통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인간 마음속의 죄된 욕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과연 “내적 욕망의 전쟁”이 살인을 설명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므로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야고보서 4:2)라고 말했다. 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께서는 분노를 살인과 동일시하셨으며(마태복음 5:22), 사도 요한 또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단언했다(요한일서 3:15).

즉, 범죄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복잡한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와 미움이 이미 범죄의 토양이 된다. 문제는 사람이 분노와 미움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폭력으로 폭발할 것인가, 아니면 육체의 정욕과 싸울 것인가? 진보적 해석은 인간의 책임을 지워버리지만, 성경적 해석은 인간의 책임을 더욱 강조한다.

창세기의 첫 살인 사건, 가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아벨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탐내며 분노했고, 하나님은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7)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저주를 받았다.

성경에 따르면 범죄의 근본 원인은 타락한 인간 본성이다. 따라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인간 정부는 영혼에 대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자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집행하는 자”(로마서 13:4)로서 범죄자를 처벌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만 가능하다.

이 점에서 성경적 세계관과 진보적·세속적 세계관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세속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범죄는 가난, 홈리스, 정신질환 등 외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인간의 보편적 타락과 세상의 부패한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범죄자를 책임지게 하지 않으려는 진보적 정책이 대도시에서 범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안 전문가 팀 밀러는 “경찰을 지원하지 않고 적대시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시민들이 군대나 국가 방위군의 강력한 개입을 환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래밀리리서치카운슬(FRC) 회장 토니 퍼킨스는 트럼프의 도시 치안 강화 방안을 두고 “국가방위군은 감염을 억제하는 강력한 항생제와 같다. 장기 해결책은 아니지만 당장 안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진짜 문제는 미국 사회의 영적 타락이며, 이는 정부가 해결할 수 없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와 영적 부흥을 통해 나서야 한다.”

밀러도 마찬가지로 “회개와 부흥 없이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모든 인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라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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