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노벨평화상과 문학상 딱 두 개를 받았다. 반면 유대인은 노벨 문학상의 23%를 차지한 민족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아이큐가 한국인의 그것보다 높다는 얘기일까? 아니다. 한국인의 아이큐가 유대인의 아이큐보다 12가 높다. 한국인의 아이큐는 평균 106이고, 유대인은 94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한국인보다 유대인의 노벨상 수상자 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걸까? 그것은 ‘질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오늘 선생님께 뭐 배웠니?”라고 묻는 반면, 유대인 부모는 아이들에게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 바로 그 차이이다. 한국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질문이나 의문을 제기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유대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자기 생각이나 의문 사항들을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질문한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으면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주입식 교육이 아이들의 독창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를 완전히 죽여버려 왔다. 게다가 요즘 스마트 폰이나 AI를 많이 접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AI가 발달한 이 시대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은 AI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점점 많아진다.
AI를 통해서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단 몇 초 만에 접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AI를 자주 활용하다 보면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와 발상은 완전히 죽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점점 AI의 노예로 바뀌어 간다. 그런데 AI를 활용하긴 하지만, 남다른 사고와 발상으로 AI에 양질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질문을 던짐으로 AI로부터 남들이 얻지 못하는 차별화되는 답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AI에 지배받는 노예가 아니라, AI를 노예로 부려 먹는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야말로 AI가 발달된 시대에 온전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질문 제기에 있어선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셈이다. 성경을 읽더라도 덮어놓고 읽고 넘어가지 않고, 따지고 의문을 가지면서 읽어왔다.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 나오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엔 반드시 의문과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실력 부족으로 인해 시원한 답 찾기가 무지 어려웠다. 목회자들이나 주석과 신학 서적을 통해 해결해 보려 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실패였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었기에 그에 대한 답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 속에 제기되는 의문과 질문들은 태산같이 많았다.
그렇게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그에 대한 선명한 답을 터득하게 해주셨다. 결국은 어느새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질문과 의문이 많은 사람이 남들과는 차별화된 양질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다. 설교자들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가 다 열렬히 ‘질문하는 사람’(Questioner)이 되어야 한다.
성경 말씀은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부터 영양 만점의 식단을 제공받아야 할 필연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날마다 제공받는 ‘양질의 일용할 영의 양식’(Our daily spiritual bread of good quality)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여 모친의 가슴팍을 파고들 듯이, 날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신령한 말씀 섭취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들어야 한다. 어머니 젖은 빨아 먹기만 하면 되지만, 신령한 젖은 그냥 얻을 수가 없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헐떡이며 시냇물을 찾듯, 뜨거운 열정을 갖고 ‘의문을 제기하고’ ‘파헤치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얻을 수 있는 ‘신비’(Mystery)이다. 오늘부터 최고의 관심사를 ‘신령한 말씀 섭취’에 두고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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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