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은혜와 마귀의 속임수
도서 「참된 은혜와 마귀의 속임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이야말로 참된 회심자의 삶 속에서 구원하는 참된 믿음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신다”거나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막연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막연한 감정은 일시적인 사랑과 기쁨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의 죄의 형벌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감정들은 자기 사랑(self-love)에 근거한 것이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된 믿음(false faith)에 속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한 번이라도(희미하게라도) 본 사람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품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신적 빛이 그분의 본성이 지닌 탁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 참된 은혜와 마귀의 속임수

신앙고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도서 「신앙고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결코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고 불변하다. 마치 인간처럼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성경의 표현은 연약한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신 하나님의 적응 방식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계획, 즉 작정과 예정은 조령모개와 조번석개하는 인간의 그것과 달리 영원하고 불변하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는 마치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시는 분인 것처럼 묘사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실제적인 변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이성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라 한다. 하나님은 ‘불가해한’ 분이시다. 영원과 불변과 무한과 전능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한 대표적인 신적 속성들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들은 철학적 신 개념과 구분되어야 한다.

황대우 – 신앙고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모든 날이 감사하다
도서 「모든 날이 감사하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왜곡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문제를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신 후에야 비로소 그분의 밝음으로 인해 어둡고 악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죄와 고통이 난무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통이 면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었습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고통조차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 순간들 가운데 가장 친밀하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병삼 – 모든 날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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