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만약 당신 안에 악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If evil lives inside of you, how do you remove it?)를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6월 1일 콜로라도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공격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용의자인 모하메드 사브리 솔리만(Mohamed Sabry Soliman)은 하마스에게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들을 기리기 위해 열린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을 향해 화염병과 자작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공격을 감행했다. 콜로라도 검찰은 약 일주일 전, 솔리만에게 살인미수 28건을 포함한 총 118건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솔리만은 애초에 총기를 이용하려 했으나, 그의 이민자 신분으로 인해 총기를 구매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총기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은닉 휴대 자격 과정까지 수강했지만, 구매에 실패해 다른 수단을 택한 것이다.

이 사례는 어떤 면에서는 위험 인물의 무기 접근을 차단하는 현재의 보안 체계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의도는 결국 다른 형태로 실현되었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악은 거의 언제나 자신의 길을 찾는다. 그것은 9.11 테러처럼 비행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처럼 비료 폭탄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일본 오사카의 초등학교 학살 사건처럼 단순한 칼 한 자루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악행에 사용되는 도구 자체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예방이 어렵다. 총기 구매를 막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지만, 악의 근원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보다 깊은 곳, 즉 인간 내면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흔히 '공격용 소총'의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매년 해당 무기로 인한 사망자보다 주먹이나 둔기 등으로 인한 피살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또한 1994년 미국의 ‘공격용 무기 금지법’ 시행 후 실시된 정부 분석에서도 해당 법률이 살인율을 유의미하게 낮추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총기 규제가 매우 엄격한 런던의 경우, 2018년에는 흉기 등을 이용한 살인률이 뉴욕을 넘어선 적도 있다.

더 나아가 총기나 칼 같은 무기는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매년 수많은 자위행위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는 도구 그 자체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악행의 ‘도구’(형상인 원인)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러한 악을 유발하는 ‘의도’(작용하는 원인)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접근이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악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칼 로저스도 “인간 본성 속에서 악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한다.

창세기 6장 5절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한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선언하며, 전도서 9장 3절도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며”라고 말한다. 시편 51편 5절, 마가복음 7장 21–22절, 야고보서 4장 1–2절 등도 동일한 주제를 반복해서 언급한다.

이처럼 인간은 본성상 악에 물들어 있으며, 작가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을 통해 그러한 본질을 소설적으로 잘 드러냈다. 쇼타임의 드라마 ‘옐로재킷(Yellowjackets)’은 이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극 중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잔혹한 행위를 ‘야생의 존재’ 탓으로 돌리지만, 결국 한 인물이 이렇게 묻는다. “그게 ‘야생’이 아니라 그냥 우리 자신이라면 어떡하지?”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위대한 선과 깊은 악 모두를 행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인간의 딜레마”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진정한 해결책은 악을 제거하는 데 있으며, 그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영적인 심장 이식'이다. 예수님은 이를 “다시 태어나야 한다”(요한복음 3:7)고 표현하셨다. 인간의 마음이 이웃을 해치는 데서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때, 폭력은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무기 금지 논쟁 자체가 필요 없게 된다.

둘째는 악을 '격리'하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번째 방법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코로나19 시기에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격리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정작 범죄자들을 사회로 조기 복귀시키는 데는 관대함을 보이기도 한다. 진정한 회개와 인격적 변화가 없는 한, 반복되는 악행은 시간문제다.

성경은 악을 격리하는 조치를 영원한 관점에서도 제시한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은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한다.

결국, 악이 존재하지 않으면 악도 행해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악을 영원히 제거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십자가를 통해 일부 악은 제거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 자체를 멸하지 않고 악만을 없애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성경이 말하듯 예수님의 보혈 아래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보호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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