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가 전국 의대의 '트리플링 사태'를 막기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책임 있는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트리플링'은 의대생들이 대규모로 유급되며 24·25·26학번이 모두 예과 1학년으로 편성돼 동시에 수업을 받게 되는 초유의 사태로, 교육 시스템의 질적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의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정부는 이번 의정 갈등을 단순한 정치 대립이 아닌 의료 100년 대계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완전히 새로운 의료 시스템 설계를 위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약 8000명의 의대생이 집단 유급 판정을 받은 상태이며, 일부는 제적 위기에 놓였다. 학사 일정상 이달 말 유급 및 제적 처리가 이뤄질 경우 내년 신입생까지 더해져 세 학년이 동시에 예과 1학년 수업을 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 회장은 단순히 학생 복귀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현행 의료 시스템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미 40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서, 당연지정제를 근간으로 한 현 건강보험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 회복과 과감한 의료 재정 투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정 갈등의 본질도 신뢰 부족에 있다고 진단했다.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현장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며 "'복귀하지 않으면 유급'이라는 방식의 압박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예측 가능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의료계와 소통하며 신뢰를 회복해야만 갈등 해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 내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황 회장은 의협 부회장 자격으로 "의협 집행부는 지역의사회와의 소통 부족, 결정 타이밍의 실패, 일관되지 않은 대외 메시지 등 총체적인 대응 부실을 드러냈다"며 "지난해 12월, 올해 2월, 5월 등 세 차례나 트리플링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고 했다.
그는 "수업은 7월에 시작돼야 트리플링을 피할 수 있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6월 말까지 3주도 채 안 된다"며 "의협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전공의 및 의대생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도 마련 중이다. 전공의·의대생들의 유급·제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행정 자문단을 구성하고, 복귀 전 기초 진료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서울 시내 2차 병원 및 로컬 네트워크 병·의원과 연계한 임상 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복귀 학생에게는 장학금 지원과 함께 의정 갈등을 성찰하는 백일장도 추진한다.
황 회장은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하루 200시간씩 일하며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공의들이 의료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진료지원 간호사(PA)가 확대될 경우 전공의가 오히려 PA의 보조인력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중소병원, 2차 병원, 로컬 네트워크 병·의원과 연계해 기초 임상 수련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등 근본적인 수련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황 회장은 끝으로 "지난 1년 5개월 동안 가장 큰 피해자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었다"며 "지금이라도 교수,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이 함께 목소리를 모아 정부와 대화하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한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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