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한국에 온 미셸 스틸(한국명 박은주) 주한미국대사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서울 영락교회를 찾았다. 주한 미국대사가 부임지인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대사관보다 교회에 먼저 가서 기도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가 얼마나 독실한 신앙인인지를 말해 준다.
4대째 기독교 신앙을 이어온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스틸 대사는 미국 상원의원으로 정치 활동할 당시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 온 사실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다음 단계로 이끄신다”며 냉엄한 정치 환경에서도 믿음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런 그의 평소 신앙관에 비쳐 볼 때 한국에 입국한 후 대사관으로 직행하지 않고 교회부터 찾은 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사로서 공무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에 많은 교회 중에 영락교회를 택한 건 그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이 교회를 다녔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가장에서 태어난 스틸 대사는 어린 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영락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그 후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낸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런 그에게 영락교회는 자신의 신앙의 뿌리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뜻깊은 장소였던 셈이다.
스틸 대사는 영락교회 본당에 들어가 기도한 후 교회 경내에 있는 한경직목사기념관을 둘러봤다. 그러고 나서 교회방명록에 “한국에서의 새로운 여정을 기도로 시작하게 돼 매우 기쁘다. 여기 있는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란 글을 남겼다. 교회 관계자는 스틸 대사가 한국 부임 첫날, 기도로 시작하고 싶어 교회를 찾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인천공항 도착 후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 전에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국민 여러분께 인사드린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 다시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오랜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감회를 모국어로 전한 거다.
그러고 난 후 “한미동맹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말로 동맹 강화와 양국 간 협력 확대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이어 “경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철통같은 한미동맹이 역내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으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한국과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부임 첫 공식 메시지에 “철통같은 동맹”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 의례적인 표현으로만 볼 수 없다. 양국 간의 협력 관계를 넘어 한·미동맹이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입장을 견지하되 동맹 관계의 굳건함을 부각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곧바로 한·미 간에 이견이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 앞에는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으며, 그 도전 과제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많은 공동의 우선순위 과제에서 훌륭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또 다른 과제들 역시 더 많은 관심과 솔직한 대화, 그리고 양측이 차이를 넘어 상호 이익을 위한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통상과 안보 분야의 민감한 현안을 풀어가야 할 과제가 앞으로 산적했다는 뜻이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날 인천공항에선 보수 진보 시민 단체 회원들이 환영,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미자유물결 등 보수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는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미 양국 간 상호 이해와 협력을 더욱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단체들은 스틸 대사를 “한국에 통상 압박과 내정간섭을 일삼는 인물” “트럼프 수탈 정책의 선봉장”이라고 몰아세우며 “머리가 검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친한파가 될 수 없다”고 맹비난해 대조를 보였다.
주한미국대사가 부임지에 도착해 마주한 광경은 그의 앞날의 혐로를 말해주는 듯하다. 21세기 자유 민주주의로 거듭난 대한민국이 마치 8.15 광복 직후 이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은 좌우 이념 대결장으로 되돌아갈 줄 누가 알았겠나.
이런 현실에서 스틸 대사가 한국에 첫발을 딛자마자 교회에 먼저 가서 기도한 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장소를 방문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계 미국 대사로서 앞으로 두 나라 사이에 풀어가야 할 난제들에 대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주님과의 동행을 다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대사의 공식 부임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필립 골드버그 전 대사가 지난해 1월 이임한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대리대사 체제가 길어지면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등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한 한국계 스틸 대사가 그의 말대로 “철통같은 동맹” 관계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신앙 뿌리를 찾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한미 양국을 위한 그의 특별한 역할이 기대된다. 한미간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며 두 나라 사이에 협력과 연대의 가교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함께 응원하며 중보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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