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C. 차오 박사
데이비드 C. 차오 박사. ©ptsem.edu/profiles/david-chao/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데이비드 C. 차오 박사의 기고글인 ‘세계 기독교의 성장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것’(The growth of global Christianity requires that we embrace new wineskins)을 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차오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아시아계 미국인 기독교 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 신학과 관련된 강좌를 가르치고 있으며, 아시아계 미국인 신학과 사역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란다. 나는 복음의 동역자로서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아 우리가 당면한 긴급한 문제, 즉 오늘날 교회의 상태에 대해 여러분께 글을 쓴다.

과거에 신앙이 번성했던 땅에서 우리는 현재 정체와 분열, 그리고 성령의 현재적인 역사로부터의 깊은 단절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성령의 역사는 이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과 유리된 상태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신학적 문제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신앙과 우리의 사회적, 민족적, 인종적 현실이 분리되어 온 결과다.

우리의 과제는 이 문제의 역사적 뿌리를 재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복음을 추상화하여 삶의 실제적 표현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회적 구체성이 통합된 새로운 구조—즉 ‘새 부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새로운 구조는 그리스도의 몸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살아 숨 쉬는 방식을 반영해야 한다.

앵글로-유럽 기독교 세계에서의 교회의 쇠퇴

수세기 동안 앵글로-유럽 기독교는 국가 권력의 구조와 함께 성장하며 제국의 확장, 국경의 형성, 정치적 의지의 강요와 깊이 얽혀 있었다. 이 맥락에서 기독교의 확장은 중립적이지 않았으며, 민족적·지리적 정체성과 긴밀하게 결합되었고, 이는 신학적 신념과 교단적 구분을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루터교, 개혁교회, 성공회, 그리고 이후의 개신교 복음주의와 주류 교단들은 신앙 고백적 공동체로 출발했지만, 각 교단은 그들의 민족적, 언어적, 정치적 환경의 흔적을 짙게 반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신학적 정체성은 단순한 신학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지역적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신학적 정체성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그것이 지닌 사회적·역사적 특수성이 간과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교단 구조는 옛 부대와 같으며, 초기 근대 유럽의 정치적·민족적·인종적 현실 속에서 형성된 신앙의 특정한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분열이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할 수 있음을 사도 바울은 경고했다. 그는 “너희 중에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 하니,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냐?” (고린도전서 1:12-13)라고 말한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새로운 형태와 구조를 요구하고 계신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교단적 구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 신앙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듣다

세계 교회의 중심축이 이동했다. 성령의 역사는 이제 과거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었던 지역을 벗어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마태복음 20:16)는 선언이 오늘날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 속한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앵글로-유럽의 신학을 ‘표준’으로 간주하고, 우리의 교회 모델과 신학 체계가 보편적이라고 상상해 왔다.

그러나 신학이 사회적 맥락과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 같은 전제가 우리를 성령의 역사로부터 눈멀게 하고, 글로벌 사우스에서 부어지고 있는 성령의 은사를 온전히 받지 못하게 한다.

바울의 가르침이 여기서 새롭게 조명된다. “눈이 손더러 ‘네가 필요 없다’ 하지 못하며, 또한 머리가 발더러 ‘네가 필요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2:21).

가난과 불의, 박해 속에서 살아가는 글로벌 사우스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단순한 신학적 개념으로 축소시키는 북반구 교회의 경향을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들은 생존의 투쟁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는 신학적 통찰은 기존의 유럽 중심적 신학 패러다임에 대한 중요한 보완적 시각을 제공한다. 그들이 씨름하는 주제—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억압, 사회적 불의—는 북반구 교회의 이론적 신학 논쟁과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교단적 경계를 초월하여 실천 속에서 구현되며, 신앙과 사회적 현실이 분리될 수 없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제 글로벌 노스에 속한 우리는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이방인의 신앙을 인정했던 것처럼, 글로벌 사우스에서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신학이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보편적 복음의 필수적인 표현임을 깨달아야 한다.

새 부대가 필요한 이유: 글로벌 교회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22).

앵글로-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형성된 신학적 전제와 교회 구조, 교단적 체계는 성령께서 글로벌 사우스를 통해 이루시는 새로운 역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새 부대는 신학적 교리와 교회 정체성이 단순한 개념적 체계가 아니라, 그것이 구현되는 사회적·지역적 맥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복음은 언제나 육화되어야 하며, 그것이 자리 잡는 민족적, 인종적, 지리적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접근이 새로운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인종과 민족성이 오용될 경우, 그것은 교회의 분열과 배타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민족주의적 신앙과 인종적 우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결론: 통합과 다양성의 균형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부대를 만들되, 그것이 인종적·문화적 배제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신, 그것이 정의와 화해, 상호 인정을 담아낼 수 있는 구조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되, 다양성 속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를 세워 나가길 바란다.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 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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