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복종과 거부”(로마서 13:5)

사도바울은 이방인(비기독교인)들이 비록 모세의 율법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새겨져 있어 그 양심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선과 악을 판단한다고 선언한다(롬 2:14-15). 이는 양심을 선악의 판단을 위해 인간에 내재하는 기능으로 본다는 뜻이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세운 옳고 그름의 기준에 따라 바르게 행동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양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suneidesis’(영어 Conscience)는 '어떤 일을 누구와 함께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양심은 그 자체로는 독립적일 수 없고 그가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지식, 경험, 신념, 이념 등에 의해 지배를 받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귀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가 가진 양심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심은 입법자가 아니라 재판관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딤전 3:9, 1:5, 히 13:18, 벧전 3:21)과 ‘더러운 양심’(딛 1:15)을 구별한다. 하나님이 인간 본성에 심어주신 본래의 양심이 그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신념과 이념에 의해 깨끗해지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하며 더러워진 상태가 지속되면 더러운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화인 맞은 양심’이 되고 만다(딤전 4:2). 결국 의존적인 존재인 양심이 바로 서고 그 양심의 판단에 따른 바른 사람, 바른 사회가 되려면 그 사람, 그 사회가 가진 양심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국가법)은 다른 해답을 제시한다.
성경은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약 4:12)에 따라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인이라고 선언한다(웨민 20.2). 사도바울은 세상 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이니 기독교인들이 복종해야 하지만 그들이 가진 권력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롬 13:5).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어떤 권력과 권위도 기독교인들의 양심을 구속하지 못한다. 한편 우리나라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각자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하고 그것을 외부에 표명하거나 그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를 말한다. 당연히 양심의 주인은 국민 개개인,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주류적 윤리의식이나 사상과 배치되는 양심도 자유를 누리는가?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고자 하는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양심상의 결정이 이성적, 합리적인가, 타당한가 또는 법질서나 사회규범, 도덕률과 일치하는가 하는 관점은 양심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하며, 대법원은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양심이든 죽기를 마다하고 지키려는 양심은 모두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소수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허용하였다.
그런데 한 줌도 되지 않는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는 존중하면서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반한다는 대다수 기독교인의 양심을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이 추진되고 있다. 과연 기독교인들은 이 법을 국가의 명령으로 복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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