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최고가 되거나 잘 사는 것,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원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원함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요, 기쁨이 되시는 주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절대로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한 것을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선하셔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놓지 않으신다는 확신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난을 제거하거나 고난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기도는 단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닙니다. 기도는 눈앞에 튀어 오른 손가락을 끌어내려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려는 몸부림입니다.
노진준 – 기도를 의심하다
마음이 망가져 있어서 이 음성이 들리지 않거나 이 음성을 거부하는 분이 있다면, 먼저 마음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회복된 마음의 렌즈로 사랑의 하나님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보세요. 슬퍼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그 일에 내가 가치를 두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감정에 한 발짝 다가가서 내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슬픔을 건강하게 느끼고 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슬픔, 분노, 안타까움, 두려움, 불안 등이 마음에 찾아올 때 ‘내가 진정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통로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 특별한 가치를 깨닫고, 그것이 가리키는 ‘비전’을 향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아픔의 에너지를 소명의 에너지로 바꿔보세요. 아주 강력한 힘이 생길 겁니다.
정진 – 마음돌봄
삿1:1-7. 1:1-3:6은 사사기 서론에 해당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아직 미정복상태로 남아있던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사실을 소개합니다. 막상 여호수아가 죽고나서 그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는 것이 이 정치적 상황이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직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주변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중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1절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수아 사후에도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은 신앙심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가나안 땅에는 미정복지와 잔존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의 우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방법은 우림과 둠밈을 통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데 (축 28:30, 민27:21, 삼상28:6)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구하였을 것입니다.
황원찬 - 사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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