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
채영삼 교수(백석대)

세상은 차별이 난무하는 곳이다. 같은 직장이라도 목에 두르는 명찰의 띠 색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한다. 세상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예리하게 구분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정’이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가능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좋다. 복음이 세상적인 차별을 없애는 능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이 교회가 차별 많은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소망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직분이 이미 계급화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이다. 아무리 섬김의 직분이라고 말해도, 실제 행위에서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하는 말에 그치게 된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예배당을 나설 때 , 성도들은 나가면서, 담임목사님을 비롯해서 길게 늘어서 있는 직분자들 앞을 지나가며 악수를 기다린다. 이런 의례 없이 예배당을 떠나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가끔씩,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아니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성도를 맞이할 때에도, 그런 일을 직분자들이 하게 하지 않고, 한 주는 1구역 식구들이 나와 성도들을 환영, 환송하고, 그 다음 주는 2구역 성도들이 하고…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성도들을 맞이하고 환송하게 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교회의 주인은 삼위 하나님이시고, 삼위 하나님이 친히 거하시는 거처, 곧 참된 성전은 성도들 자신이다. 그들이 교회로서 자신의 지체들을 환대하고 환송하게 하는 것이, 성도의 코이노니아를 구체적으로 실현 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오늘 날의 교회에서는, 조금 규모가 생기면, 목사와 신도 사이의 관계는 매주 인사 나누며 점검이 되지만, 구역이 다른 성도끼리 인사나눌 기회는 거의 없을 수도 있게 된다. 예배당을 드나들며 사역자들에게 눈도장 찍듯이 인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성도를 환대하고 환송하며, 서로가 주인되고 환대할 손님이 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성도의 공동체 다운 교회로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러다가 몇번은, 목사님과 직분자들이 그 환대와 환송을 맡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목사나 직분자만 할 수 있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어떤 교회에서는, 외부강사가 설교를 마치면 서둘러 방에 가둔다. 성도들과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은 담임목사와 사역자들만의 특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이고, 누구 특정한 사람이나 사람들의 소유가 아니다.

오늘날 교회가 극장이나 레스토랑처럼 되어가면서, 성도가 소비자의 위치에 있고, 사역자들은 소비재처럼 소모되기도 하며, 성도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거나, 관리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성도가 서로를 섬기며 서로를 목양하게 하는 것이, 성도의 교통,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를 살리는 방향이 될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여러 성도들이 늘어선 줄을 지나가며, 서로 손 잡고 안부를 묻고, 성도가 성도를 돌보는 성도의 코이노니아를 보게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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