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글로발선교교회 목사   ©기독일보

자라오면서 어머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늘 불만이 많았었습니다. 적은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도 불합리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님의 말씀만큼은 애써 동의하지 않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를 통해 전체를 평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오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습니다.

사람은 들은만큼 영향을 받습니다. '안다(Knowledge)'는 것은 들었다는 것의 용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듣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서 지식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듣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됩니다. 성경은 믿음의 근원이 '들음'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믿음은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성됩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듣는 생활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듣는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건강한 신앙생활이 파괴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멋진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듣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을 듣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악한 영은 듣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도 귀를 닫지 아니하면 가치없는 소음을 듣도록 만듭니다. 소음도 자주 듣다보면 익숙해 지기 때문입니다.

한적한 교외지역에서 살던 분이 뉴욕 중심가로 이사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각종 도시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척이나 괴로워했지만 나중에는 이에 익숙해진 경험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 도시소음 없이는 잠조차 청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모슬렘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부임 초기에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확성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기도소리를 듣는 일이랍니다. 새벽, 오전, 오후 할 것없이 무차별적으로 메아리치는 이 기도소리에 영적 고뇌를 경험하기도 하고, 활동 자체도 방해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소리에 익숙해져가는 자신들을 보며 너무도 놀라워한다는 고백은 '들음의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도록 만듭니다.

듣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들음을 통해서 신앙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할 것을 듣는 자세를 개발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들을 가치도 없는 소음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도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들을 귀'를 강력하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려서 듣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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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