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대표적 명강연 중 하나로 꼽히는 지난 1998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Monterey)에서의 26분20초 분량의 TED 강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증거해야하는 지 그레이엄 목사에게서 힌트를 얻어봅시다.

2010년 4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는 빌리 그레리엄 목사(사진 가운데).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GEA, www.billygraham.org)

성직자인 제게 이 자리가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저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나 하늘을 날 수 없는 올빼미와도 같군요. (웃음)

예전에 산 호세에서 설교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 강연에 소개해준 제 친구 마크 밤이 여기 실리콘밸리에 있는 몇몇 회사의 리더나 CEO들과 함께 아침식사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저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죠. 그리고 저는 꽤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기술과 과학이 이뤄낸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것을 들었습니다. 그건 정말로 눈이 확 뜨이는 그런 경험이었죠. 저는 우리가 이 컨퍼런스의 막바지에 다가왔다는걸 압니다. 어떤분들은 왜 종교의 영역에 있는 강연자가 나왔는지 궁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리처드가 대답할 수 있을겁니다. 결정을 그가 내렸기 때문이죠.

몇 년 전 저는 필라델피아의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가고 있었죠. 저는 어느 호텔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었죠.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이 이 호텔이 묵는다는 얘길 들었어." 그러자 다른 사람이 제가 있는 방향을 보고 말했죠. "맞아. 여기 있어. 이 엘리베이터 안에 우리와 함께 있지." 그러자 그 사람이 저는 위에서 아래로 죽 훑어보더군요. 한 10초 정도를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상에. 이런 김빠지는 일이 있나!" (웃음)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이 들은 멋진 강연들과 제가 듣고자 했던 모든 강연 하나하나에 뒤이어 저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김빠지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몇년 전 동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노스 캐롤라이나 샬로트시(市)의 시장이었던 사람과 통로를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존 벨크였습니다. 어떤분들은 이미 아시겠죠. 거기엔 어떤 술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두세번 정도 일어났죠. 그 사람이 하려고 했던 행동이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었습니다. 스튜어디스가 지나갈때 툭툭 건드리면서 괴롭혔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때문에 짜증을 냈습니다. 결국 존 벨크가 말했습니다. "당신 여기 누가 앉아 있는지 압니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몰라요. 누군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요." 그가 말했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소!" 그가 제 쪽을 돌아보고 말했습니다. "그녀를 저기로 데려다 놓으시오" "당신 설교가 틀림없이 내게 도움이 될 거요." (웃음) 저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미래를 눈여겨 보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오늘밤 그 중 몇 가지에 대해 들었습니다. 저도 그 시대를 살면서 무슨일들이 일어나는지 보고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80세이기 때문이죠. 올해는 제게 80년째의 해 입니다. 그리고 제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양 다리에 정맥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일어나 나올때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왜나하면 저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죠. 그와 더불어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몇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우리가 기술적인 혁명을 경험한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전에 경험을 한 적이 있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제가 말하고 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과거 어떤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근동지방에서 강력한 힘을 갖게 해 줬던 엄청나고 다이나믹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왕위에 오르고, 다윗왕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었죠. 그는 하나님을 경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기넘치는 시인, 철학자, 작가이며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연구하는 전투와 분쟁에 대한 전략을 소유한 군인이었습니다.

다윗왕 이전 두 세기 전에 히타이트민족이 철의 제련과 주조 기술의 비밀을 발견하였고 그 기술은 천천히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 기술을 보거나 습득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죠. 하지만 다윗은 모든 걸 바꿨습니다. 그는 철기 시대를 이스라엘에 들여 왔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엄청난 양의 철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그 시대의 증거물들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막대기와 돌로 만들어진 조악한 도구들 대신에 이스라엘은 철제 쟁기와 괭이와 낫과 군사무기를 가졌습니다. 이윽고 그 시대의 이스라엘은 완전히 변화 하였습니다. 철의 도입은 어떤 면에서 우리 세대가 마이크로칩을 가지게 된 것과 비슷한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술이 풀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문제점들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고 여러분들은 그것들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있는 누구도 그것을 이야기하는걸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다윗이 첫 번째로 본 것은 '인간의 악함'이었습니다. 악함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글래드스턴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말했던 '시편' 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다윗은 시편에 인간의 악함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그가 내 영혼을 회복시킨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을 탐사할 수 있습니다. 첨단기술을 놀라울 정도로 극한까지 끌어올렸죠. 이 컨퍼런스에서 생생히 보신 것처럼요. 우리는 5킬로미터 아래 바다 밑을 보았습니다. 또 앞으로 수십억 광년 바깥의 은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최첨단 분야의 전함들과 군인들은 이라크에 전쟁을 하러 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왜 우리는 모든 시대에, 세상의 모든 부분에서 전쟁과 혁명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과도 함께 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습관을 멈추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붙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인종차별과 불평등과 폭력이 세상을 휩쓸고 비참한 비극을 낳고 죽음을 몰고 옵니다. 우리중 가장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리기엔 역부족입니다.

저는 이런것들을 짊어질 신탁이나 또는 효과 있는 기술적 능력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바꿔야 할까요. 그리하여 그 사람이 거짓말 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또 사업이나 노동이나 운동경기따위에서 사기에 관한 이야기들로 신문이 얼룩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문제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영혼에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우리의 창조자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는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 마 15:19

영국의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함이 깃든 곳은 우리의 마음이고 악함을 잡아 뜯어내야 하는 곳도 마음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했었습니다만 -- 제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아인슈타인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죠. 왜나하면 그 누구도 그에게 학위를 줄 자격이 없었다고 말하더군요. (웃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한 영혼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보다 플루토늄을 변성시키는게 더 쉽다."

그리고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골머리를 앓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밤 들은 인터넷과 같은 기술적 진보의 혜택을 누리면서 부도덕한 일에 또한 사용하는 이들을 보셨을겁니다. 여러분은 똑똑한 사람들이 모든 시스템을 멈추게 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든 것을 보아 왔습니다. 오클라호마시 폭탄테러(1995년)와 같은 사건은 기술이 끔찍하게 사용된 단순한 사례 입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왕은 그가 그의 영혼 깊은 곳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조차도 간음과 살인을 포함한 개인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악함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당신만이 제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우리는 마음과 육체 그 이상의 존재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우리는 영혼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나 우리가 과학기술에서 찾은 것 이상의 어떤 것을 갈구하는 우리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삶의 의미를 갈구하고 이러한 삶을 넘어선 무언가를 찾아헤매는 당신의 한 부분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갈구하는 당신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무엇인가를 찾아헤매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많은 대학에서 강연을 합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합니다.

캠브릿지나 하바드나 옥스포드나 이런 대학에서 강연을 해 왔습니다. 저는 하버드에 강의를 하러 3, 4개월... 아니 두달 후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과거 몇 번인가 받았던 똑같은 질문을 다시 받게 되겠죠. 이 질문들은 이런 식일 겁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비록 당신이 종교적 믿음이 없더라도 삶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이쓸 거라고 궁금해 하는 때가 있을 겁니다.

토마스 에디슨 또한 말했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때,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때 이것들을 지휘하는 지위관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백악관 만찬에서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부인의 옆에 앉았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 아는 도브리닌 대사 옆으로 갔습니다. 저는 공산주의 러시아에 몇 번 간적이 있었고 그들은 제게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드리닌 씨를 매우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르바초프 부인 옆에 앉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요?" 그는 이런 대답으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부인에게 철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부인이 정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만찬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날 저녁 나누었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부인은 이야기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보다 더 높은 무언가가 저 위에 있다는 걸 알아요"

다윗 왕이 풀 수 없다고 깨달았던 두 번째 문제는 인간의 고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저서는 성서의 욥기입니다. 욥이 이렇게 말했죠.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 욥5:7

물론 과학이 어떤 종류의 인간의 고통을 줄여놓은 건 확실합니다. 저는 몇 달 안에 80세가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지낼수 있도록 해 준 의학적 진보에 매우 감사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마요(Mayo) 클리닉의 제 담당의사는 이 자리로 오는, 여기로 오는 여행을 하지 말기를 권했습니다. 저는 거의 넉달간 강연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와 같이 하루에 세 네번씩 강연을 한다면 여러분은 무뎌져 버릴겁니다. 그게 제가 연단 앞에 선 이유이고 이 노트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TV나 어디든지 여러분이 제 이야기를 들을때 저는 애드립으로 하였습니다. 저는 강연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 강연을 읽으면서 하지 않습니다. 강의나 연설도 절대 읽으면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애드립으로 합니다. 그러나 오늘밤에 여기에 몇가지 노트를 적어왔습니다. 제가 하려던 뭔가를 잊기 시작한다면 이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들 사이에도 가장...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사회라 할지라도 가난은 존재합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가정이 있고 친구들은 우리를 배신합니다. 참을 수 없는 정신적 압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문제나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우리가 대답하지 못한 오래된 질문입니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 다윗이 풀지 못했던 마지막 문제는 '죽음'이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죽음이 우리 세대에 숨겨진 논제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필멸성을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미신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크린에 비춘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마릴린 먼로는 스크린에서 살아있을때 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아직 먼로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릴린 먼로나 클라크 게이블이나 누군가가 죽은걸 모르더군요. 옛 스타들이 살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크린에서 마치 살아있을 때 처럼 멋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300여명의 의원들과 조각상의 방(National Statuary Hall)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방에 있는 우리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누구든 상관 없이요."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과거의 위대한 사람들과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젊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들이 언젠가 죽는다는걸 이해시킨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고대 전도서의 저자는 천국 아래에서 여러 활동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실만한 몇몇 유명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괴로워하는 순간을 보았습니다.

허나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마음에 떠올리지는 않았겠죠. 저는 지난 주에 유명한 의사인 아버지를 둔 한 여인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는 아버지가 신을 믿지도, 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신에 대해 생각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자 어느날 침대 한켠으로 일어나더니 간호사에게 목사를 만나게 해줄 수 있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피할 수 없는 일과 신에 대하여 생각하려 했습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몇 년 전 한 대학교의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제 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삶이 '순간' 이라는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나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의 <2차대전 종전의 영향>에서 인용하면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매와 같은 것이다"

그는 이 말을 개인적인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폰 브라운 박사를 잘 압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장대한 우주는 창조자에 대한 확신을 믿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한 우리가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노력과 창조성의 초점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이런 삶과 그의 부활의 진실성은 인류의 희망이다"

저는 독일과 프랑스와 105개국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 강연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후 현대 독일의 창립자로 존경받는 아데나워 총리를 만날 수 있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죠.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나?"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다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사무실을 떠날 때가 되면 나는 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한 책을 쓰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네"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한 연극에서 죽어가는 남자가 침대 옆에 모인이들이게 이런 말을 합니다. "후회가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그가 죽을 때이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7세기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은 그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파스칼은 현대 문명의 설계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선구적인 수학자이며 훌륭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확률 이론의 창시자이며 컴퓨터의 첫 모델(계산기)을 만든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의 이름을 딴 컴퓨터 언어(PASCAL)와 매우 친숙할 것입니다.

파스칼은 우리 인간의 악함과 고통, 죽음의 딜레마를 깊숙히 탐구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는 다음과 같은 현상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과 인간의 진취적 정신에서 엄청난 수준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데 반해 분노와 위선과 자기망상에 또한 꽉 차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파스칼은 우리 인간을 천재성과 자기망상의 놀랄만한 조합이라고 바라봤습니다. 1654년 11월 23일 파스칼은 심오한 종교적 체험을 합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적으로 내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것이다."

두 세기 후, 한 프랑스 역사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강한 지성이 예수그리스도의 권위에 그렇게 겸허히 순종하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다."

파스칼은 우리를 조화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은혜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가 죽을 때 천국에 부름 받을 것이고 그의 죄와 실패들은 용서 받을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과학적 관찰과 근거를 뛰어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마음은 이성이 알 수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라는 잘 알려진 속담을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잘 알려진 파스칼의 내기가 있습니다. 그가 말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신을 믿는데 건다면 그리고 그의 사랑에 마음을 연다면 비록 당신이 틀렸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없다는데 건다면 당신은 모든 걸 잃게 됩니다. 지금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요"

파스칼에게 과학적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의 마음을 스쳐간 어느 것보다도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을 때 그는 하나님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왕은 그의 시대에는 상당한 시간인 70세까지 살았습니다. 결국 그 또한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을때 이러한 글을 썼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나와 함께 함이니라"

이것이 악함과 /고통과 / 죽음의 '세가지 딜레마'에 대한 다윗의 대답이었습니다.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그가 여러분의 삶을 채우도록 하며 당신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이 또한 당신의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17세까지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아침마다 소젖을 짰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매일 저녁 또 같은 소의 젖을 짜야 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있는 소가 20마리였으며 저는 농장에서 일하면서도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대학에서도 어떤 일에 제 맘에 일어나기 전까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리스도와 마주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니"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나는 진리이고 모든 진리의 화신이다."

그는 거짓말장이이거나 미쳤거나 그가 주장한대로였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느쪽인가? 저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저는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실험실로 가져가서 실험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는 '그를 믿는다'라고 말하자 그가 제 맘속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제 삶을 바꿔 놓았죠. 그리고 이제 저는 부름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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