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세미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과 한세대학교가 23일 오전 여의도순복음교회 바울성전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및 한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기념 학술재를 ‘부흥의 역사와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최승연 기자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 이영훈 목사) 국제신학연구원과 한세대학교가 23일 오전 여의도순복음교회 바울성전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5주년 및 한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부흥의 역사와 미래’라는 주제로 학술제를 개최했다.

학술제는 총 4개의 발제로 구성됐으며 이에 앞서 유대현 박사(한세대학교 부총장, 총장 직무대행)가 개회사를 전했다. 유 박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창립 65주년, 한세대학교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부흥의 역사와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학술대회는 순복음교회와 한세대학교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를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헬렌 박사
김헬렌 박사(에모리대학교, 역사신학)가 ‘부흥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최승연 기자

이어 최광돈 박사(한세대학교 대학원장)가 대표기도를 드렸으며 김헬렌 박사(에모리대학교, 역사신학)가 ‘부흥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김 박사는 “부흥의 미래란 무엇일까? 저는 이에 대해 성찰해보도록 받은 질문이다.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저는 예언자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야 겠다”며 “한국적인 정황 속에서 평양대부흥과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를 빼놓고 부흥의 역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늘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의 맥락을 포함하여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부흥 운동이 여성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알려져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교회 설립과 성장에 있어 한국의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교회 창립 65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제가 특별히 1977년 기념앨범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20주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자료를 살펴본 결과 교회의 대다수 성도가 여성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故 조용기 목사 역시 자신의 목회 사역 가운데 여성의 핵심적인 역할에 대해 자주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교회 부흥의 미래를 위해 점검해야 할 핵심 요소 하나를 꼽자면 저는 여성의 존재와 경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여성들은 1970년대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물론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도 하나님과의 강력한 만남을 경험했다. 저는 한국전쟁 고아이자 월드비전 한국 고아 합창단의 일원이었던 오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녀는 ‘조이 선교회’라는 선교단체의 일원으로서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 체험을 하기도 했다”며 “1973년 그녀는 인생의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 참석했으며 참석 이후 그녀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 저는 너무나 좌절했습니다. 기쁨을 누려야함에도 그러지 못했습니다’고 회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지영 씨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거듭남’이라는 새로운 영적 실체를 깨닫는 신앙 체험을 했다. 그녀의 거듭남의 경험은 월드비전 한국 고아 합창단을 포함해 그녀로 하여금 담대하게 중대한 변화들을 도맡도록 했다. 합창단 자체가 생동감 넘치는 영적 경험을 주고 있지 못했기에 그녀는 합창단원들이 ‘살아 있는 노래’를 부르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자청하여 합창단원들이 확실히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자기 방에서 ‘비밀 기도회’를 열었다”며 “그리하여 오지영과 다른 4명의 한국 여성들은 합창단을 결성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린 시절 월드비전 한국고아합창단에서 함께 했던 노래를 불렀다. 보다시피 오지영과 같은 여성들처럼 부흥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녀는 부흥 기간동안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영적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경험했다. 나아가 이는 그녀가 세계 선교를 위해 세계를 순회하는 자신의 합창단을 조직하는 데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이끌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어 “저는 부흥운동의 자극이 1970년대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시대에는 종종 사회 구원의 충동을 억누르는 개인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부흥의 강조됐다. 부흥의 미래를 내다보며 저는 다음 세 가지 핵심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며 “첫째, 우리는 한국전쟁의 종식을 외쳐야 한다. 남북한의 분단은 오랜 유산을 만들어 냈지만, 한국 개신교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의 주요 결과 중 하나는 그것이 인종적 긴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유산 중 하나는 한국인들이 흑인 미국인과 거리를 두어 백인 미국인과 인종적 친밀감을 조성했다. 이러한 점에서 둘째, 한국교회와 재미 한인들은 미국의 흑인 개신교인들과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며 “셋째, 우리는 여성이 세계 기독교의 대다수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오순절주의는 성령과 직접 만나는 여성들을 위한 영성의 매우 강력한 형태이다. 조용기 목사 또한 자신의 사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있어 여성의 역할을 언급한 바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녀는 “어떻게 하면 여성이 회중의 다수가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부흥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한국 여성들이 1970년대 비천한 환경에서 부흥의 힘을 경험한 민중이었다면 우리가 부흥의 미래를 계속 고민하기 위해서는 부흥의 힘이 한국과 전 세계의 일상적인 여성의 삶에 지속적으로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경배 박사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부흥의 역사’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최승연 기자

이어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부흥의 역사’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민 박사는 “성령부흥은 기독교회 신앙의 생명이다. 그것은 한국교회 처음부터의 원상이다. 하지만 세계교회 역사에서 그것은 실상 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대개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물결을 타고 일어선 외국선교의 불길을 따라 찾아온 선교사들에 의해서 당초부터 성려우흥 전통에 따른 신앙 형태에 인도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5~19007년에 이르는 성령대부흥의 불길에 인도되어 한국교회의 찬란한 오순절신앙의 전통이 확립함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역사의 기운을 타고 김익두 목사, 이용도 목사, 정남수 목사, 이대영 목사 등의 부흥운동이 지속됏다. 그들은 ‘십자가의 보혈’과 고난의 신비에 대한 절실한 사랑과 감사를 중추로 부흥사경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에서 한국교회 약사의 거대한 파고가 ‘성령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격류로 대세를 잡는다”며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는 이제 세계 최대의 교회로 부상한 지 오래다. 한국 진보신학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강원용 목사도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성장하는 순복음교회에 대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사회 전체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1907년 평양성령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 더 나아가 세계사적 의미로 보면 엄청난 사건이다. 1907년 1월 6일부터 시작된 사경회가 8일이 지나서 성령강림절이 됐으며 이는 1월부터 당해 6월까지 이어졌다. 이는 4년에 거친 장기간의 간절한 회개의 기도와 지속적인 성경공부로 인해 이뤄졌으며 온 국민에 감동을 줬고 온 세계가 주목했으며 온 세계에 울려퍼졌다”며 “부흥운동 13년 이후 평양에서는 1920년 6월 31일부터 장로회연합복흥회가 개최됐는데 이런 일을 가능케 했던 동력은 바로 김익두(1874-1950) 목사의 기도다. 김익두 목사는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에 나타났으며 한국 근대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민중초근에 가장 깊이 처음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거대한 운동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6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나라는 엄청난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성령의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했으며 그 시대를 선도하고 주도한 것이 조용기 목사였다. 그는 성령인격 신앙으로 하나님을 현실적인 생생한 존재로 우리 역사 속에 살아 계신 분으로 체험하게 하고 기독교는 숨쉬고 살아있는 역동과 실상의 신앙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조 목사의 성령부흥운동은 교회와 사회, 한국과 세계를 연계시키고 있었으며 나아가 현재와 미래 영원을 연통하고 있었다”고 했다.

민 박사는 이어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종교다. 하지만 묘하게 교회의 역사 안의 존재가 교리와 조직적 전통의 역학에 구도화하여 존속하는 불가피성 때문에 생명력의 역동을 성령 임재에 호소하는 운동이 분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여파로 파송된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성령부흥의 신앙 구도가 생태적으로 존속했고, 그것이 1907년 평양성령대부흥에서 정착해 세계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었으며 그 이후 사경부흥회의 전통으로 정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던 것이 한국에서는 조용기 목사 때에 이르러 세계적인 성령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전역, 동서양 6대주, 공산권, 회교권에 전파되고 그것은 기독교가 영원과 현재, 교회와 세계, 경건과 삶, 그 차원을 연결하는 거대하고 무궁한 실체와 거점임을 역사상 처음으로 전파 구현하는 계기가 됐다”며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은 성령인격론이다. 지금까지의 성령론가 전혀 다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일상생활에 지금 여기 함께 계시고 현장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와 직접 말씀하시고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성령인격론은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세계적 부상의 시기가 조 목사의 세계적 활동과 묘하게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 목사의 세계적 복음 전파의 지칠 줄 모르는 발길, 세계 6위 강대국 한국의 등장이 묘하게 동시에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학술제는 이어 장 다니엘 플뤼스 박사(Pontiflica Università Gregoriana 교수)가 ‘카리스마 제도와 갱신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한 고찰’, 배덕만 박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백향나무교회)가 ‘한국교회의 부흥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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