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요즘 공의라는 말이 제 마음에 닿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공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Righteousness of God이라는 의미인가요?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다룰 내용이 아주 많으나 간단하게 알기 쉽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선 공의(公義)라는 단어는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를 하나로 줄인 말입니다. 인간사회에 불공평하고 부정한 일들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분과 위치에 따라 불이익 차별을 당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인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당연히 그러하며 또 그런 방향으로 그분이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을 그분의 공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에 찌든 인간들이 사는 이 땅에선 완전한 공의가 실현되기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은 고통당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생기며 날이 갈수록 즉, 인간이 죄로 타락할수록 던 빈번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통치에 잘못이 있거나 세상을 방임한 탓이 아닙니다. 인간끼리 각기 어리석음과 오류와 죄를 품은 채 무한 시기 경쟁함으로써 파생되는 필연적 결과일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는커녕 인간사회에 자기들이 제정한 법과 제도와 관습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해 인간적인 공의마저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사람이 그분의 계명을 온전히 실천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 세상이 타락해진 것은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의 공의의 본을 보이고 불신세상을 이끌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의 잘못이 더 큽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최후심판으로라도 당신의 공의를 당신께서 바로 세웁니다. 작금 한국이나 미국의 사태가 아주 혼돈스러워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져 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인간에겐 긍정적 결말)과 심판(부정적 결말)이라는 양 측면이 다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번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이전보다 부정 없이 깨끗케 될 수 있거나 아니면 계속 혼란으로 치달을 수도 있지만 그 각각에 그분만의 공의는 엄연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인간사회의 공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든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에는 전혀 손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끝까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그분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꿔서라도 당신의 공의를 세웁니다. 아니 이 땅과 인류를 지금 당장 몽땅 멸망시킬지라도 그분의 공의는 눈곱만큼도 훼손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분 앞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미 예수를 믿어 그분의 공의 안에 살고 있는 자는 그 심판에서 건져서 구원의 완성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설명 드린 공의에 비해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는 조금 다르게, 더 넓고도 완전한 의미로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우선 앞에서 말씀드린 공의 즉, 하나님이 악인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벌을 주어서 사회정의를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바로 세우는 일도 당신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율법을 주신 것도 그분의 의로움으로 인간이 그 계명대로 순전하게 살 때에 인간사회에 당신의 공의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계명대로 온전히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악인을 벌하기로 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도적 주도적 일방적 무조건적인 용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말합니다.

인간 죄의 형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대신에 죄인인 우리는 살려주셨습니다. 죄를 벌을 주는 것이 공의라면 죄인을 살려주는 것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에는 공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것이 바로 그분의 의입니다.

신자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는데 자신의 공로 자격 능력 하나 없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게 바꿔주실 성령님이 영원토록 내주하십니다. 말하자면 인간사회의 공평과 정의, 하나님의 공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자는 신자뿐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온전한 십자가 은혜가 실현되지 않았고 성령님도 각 개인에게 내주하지 않아 옛 이스라엘에선 하나님의 공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전권 대사가 되어서 그분의 공의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한 알의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의롭습니다. 그분의 의는 영원토록 단 한 치도 줄거나 퇴색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의,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바로 세울 책임은 십자가로 의롭게 된 신자에게 있습니다. 신자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정말로 의롭게 사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 다른 죄인들로 회개케 해야 합니다. 또 어떤 극악한 죄인이라도 그 사람은 주님의 긍휼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섬기어 십자가 예수님의 의를 덧입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벌 받아 마땅한 자를 벌 주는 것이 공의라면, 벌 받아 마땅한데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는 것이 그분의 의입니다.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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