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1430원을 돌파한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1430원을 돌파한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430원까지 돌파하며 폭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과거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섰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중 은행이 조선사 선물환을 직접 매입할 수 있도록 단계적 지원을 하고, 해외 금융자산을 매각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환율 방어에 안간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27일 외환당국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09.3원)보다 22.0원 오른 1431.3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16일(1440.0원)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과거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던 적은 아시아 금융위기 전이에 따른 시장 불안심리가 커지던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와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뒤 금융 불안이 고조되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두 차례뿐이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후에는 어김없이 경제 불황이 닥쳤다. 이에 이번에도 그에 맞먹는 경제 위기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 위기설을 일축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세계 9위로 대외 자산이 안정돼 있으며, 현재는 원화뿐만 아니라 주요국 통화가 모두 약세를 보이는 등 과거 경제 위기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5일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미국만 나 홀로 강세를 보이는 '킹달러' 현상이다. 과도하게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원화만 이탈해서 환율이 폭등했는데 지금은 주요국 통화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가는 등 과거 양상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국회 업무현황 보고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 연준의 긴축 강화와 글로벌 달러화 강세라는 대외요인에 주로 기인하며 우리나라의 대내외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과거 두 차례의 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실제 원화의 실질적 가치는 아직 저평가 국면에 돌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등에 따르면 국내 실질실효환율은 7월 101.4(2010년=100)를 기록해 기준 연도인 2010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교역조건 등을 반영한 환율로, 한 나라의 화폐가 다른 나라 화폐보다 얼마만큼 구매력을 가졌는지 나타낸다. 2010년 값을 100으로 보고 이보다 높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됐다고 판단한다.

같은 기간 동안 유럽(90.1)과 일본(58.7)은 기준 연도에 비해 크게 낮아 저평가됐고, 미국(129.72)과 중국(129.17)은 크게 높아 고평가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정부는 환율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연말까지 약 80억 달러의 조선사 선물환 매도 물량이 국내 외환시장에 추가적인 달러 공급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선물환은 일정 시점에 외환을 일정 환율에 매매하도록 약속한 외국환이다. 은행은 선물환을 토대로 달러를 조달해 국내에 공급하는데 선물환 물량을 원화를 기준으로 정해놔 환율이 오르면 한도 소진으로 선물환 매도가 어려워진다.

정부는 은행들의 선물환 한도를 확대해 매도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시중에 달러 공급을 늘리면서 외환시장과 환율 안정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해외 금융자산을 팔면 인센티브를 부여해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은도 14년 만에 국민연금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했다.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국민연금은 한은에서 달러를 빌려 해외 투자에 나설 수 있고 한은은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공격적인 해외 투자가 가능해진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화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무역수지 개선에 노력하는 등 달러 유동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달러 유동성도 대비해야 한다"며 "시장의 변동은 심리적 요인에 많이 좌우돼 정책 메시지를 일관되고 안정감 있게 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펀더멘털 상으로 우리나라가 나쁜 편은 아니고 외환보유고도 상당히 많이 가졌다"면서 "미국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1400원 언저리에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석학인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교수는 최근 열린 컨퍼런스에서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는 게 좋다"며 "통화스와프를 폭넓게 가져가는 게 낮은 비용으로 세계 금융시장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외환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 가치를 절상하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수출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협력을 통해 이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뉴시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환율 #달러 #외환위기 #금융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