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25주년 세미나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25주년 세미나에 참석한 주요인사들이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장지동 기자

한국교회사학연구원(권평 원장)이 9일 오후 서울시 서대문구 소재 은진교회(담임 김유준 목사)에서 제280회 월례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1부 창립 25주년 감사예배는 한정열 목사(순복음총회신학교)의 인도와 기도, 이상화 목사(서현교회)의 설교, 성찬식, 권평 원장(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광고, 민경배 박사(연세대 명예교수)의 축도 순서로 진행됐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25주년 세미나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 25주년 기념 케익 커팅식을 가지고 있다. ©장지동 기자

이상화 목사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요 21:14~17)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어진 성찬식에서는 김은섭 목사의 집례로 김유준 박사(학술부장)·정용 목사(백석대박사과정)가 위원으로 섬겼으며, 창립 25주년 케이크 커팅식을 가졌다.

이어 2부 창립 25주년 세미나에서는 유지수 박사(상임고문)의 사회로, 민경배 박사가 ‘6.25 실록’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민 박사는 “6.25가 없는 달력이 많다. 대한민국에는 어디에도 6.25 기념비가 없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적에 25주년은 1909년이다. 한국에 20년 동안 와 있었지만 17년을 미국 외교관으로 있다가 3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던 알렌 선교사의 기념사가 적힌 1909년 미국 국무성 문서에는 한국이 ‘세계 기독교의 기수국가’라는 글귀가 있다”며 “‘기수’라는 말은 그 팀을 대표하고 상징하며 선도하고 소명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한국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를 상징함을 뜻한다. 이처럼 우리 연구소가 25주년을 맞이한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25주년 세미나
2부 창립 25주년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이 민경배 박사. ©장지동 기자

민 박사는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아직도 세계 문제”라며 “공산혁명은 러시아에서 일어났으며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그리고 그때 공산주의라는 것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처음에 발전했던 것 이상으로 민족적 메시아니즘이었다”고 했다.

이어 “1930년대에 나온 통계 자료를 보면 지도부 공산주의자는 남한에 300명, 북한에 45명, 해외가 130명이 되었다고 한다”며 “남쪽에 공산주의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남쪽에 지주들이 많았고, 그들의 아들들이 일본 등에 유학을 가서 공산주의와 니힐리즘 그리고 국가를 부정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배워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켰고, 서양도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이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관계사를 보면 6.25사변 중 기독교회는 공산당에게 혹독한 사상 유례 없는 맹폭을 겪는다. 그런데 1918년 러시아 땅에서 조선 사회당을 조직한 것이 기독교 전도사 이동휘였다”며 “1922년 2월 모스코바에서 열린 극동 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간 것도 기독교인 여운형과 김규식이었다”고 했다.

이어 “더구나 해방 이후 남한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자들의 폭동(4.3사건 14연대사건)은 목사 이재복이 주관하고 있었다. 그는 남한 남노당의 군사책으로 박헌영의 지령에 따라 폭동을 주도하고 있었다”며 “그는 국군 안의 공산당원 명부를 6.25 얼마 전 특무대에 넘겨주어, 남침과 함께 일어날 뻔한 군내 반란과 남침 인민군과의 연계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그 공으로 특사를 받을 수 있었으나, 스스로 민족 앞에 죄인이라고 하여 총살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또 “6.25사변 중 남궁혁, 양주삼, 송창근 등 많은 거물 기독교 목사들과 교인들을 북한에 납치해 간 인물 최문식도 평신 1939년 졸업 목사로, 김종대, 안광국, 김윤찬, 박병훈, 황은균 등과 동창”이라며 “33인중 하나인 김창준 목사는 북한에 가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었다”고 했다.

민 박사는 “38선은 1896년 6월 9일에 그어졌다. 윤치호와 민영환은 통역관과 일꾼을 데리고 모스크바에 가서 러시아 외상 라바노프와 일본군벌 수장 야마가따 아리도모에 의해 38선을 구획하고, 1903년 10월 4일 노일간에 한만교환 문서에 평양 원산을 잇는 39도선을 약정한다”며 “이 세상에는 완충지역을 필요로 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나토를 보면 완충지역은 우크라이나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에는 완충지역이 있어야 한다. 세계 역사의 완충 지역을 말하자면 한국인 것 같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라는 공산주의 세력이 있다. 그 한 가운데 한국이 있다. 한국은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라며 “1945년 8월 1일엔 포츠담회담을 통해 미군과 소련군의 한국 진주 분계선으로 38선이 확정된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미군과 소련의 점령 지역의 경계선이 38선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하는데, 남한과 북한 그리고 유엔군의 싸움이 38선에 한해서 끝이 난다”며 “결국 38선을 이용해 휴전선이 그어지게 된다. 이처럼 38선의 개념은 한국이 세계 완충 지역이 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아울러 “6.25 전쟁에서 중공군과 유엔군 그리고 한국군을 포함해서 48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며 그 의미는 거대민족사의 중추를 이루지만 어디를 가도 6.25 기념비가 하나도 없으며, 행사도 드물다”며 그 실록의 희미함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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