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신규 결의안 채택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6일(현지시간) 거수를 통해 자국이 추진한 대북 제재 신규 결의안 표결을 진행했다.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중 13개 국가가 신규 결의안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은 무산됐다.

현행 규정상 새로운 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려면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가 모두 동의하고, 총 15개 이사국 중 9개 국가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표결 직후 "오늘은 이사회에 실망스러운 날"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오늘의 무모한 결과는 북한의 위협이 계속 증가하리라는 것, 더욱 위험하게 증가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개탄했다. "또한 다른 확산자들에게도 처벌을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표결 시작 전에는 "오늘의 투표는 더 명확할 수가 없다"라며 "이사회의 행동은 북한의 긴장 고조 이유가 아니다. 이사회의 '무행동'이 이를(도발을) 가능하게 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의 행동이 이른바 '뉴노멀'이 되도록 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

그는 "북한은 이사회의 침묵을 처벌 없는 행동과 한반도 긴장 고조의 청신호로 받아들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런 취지로 "우리는 모든 이사국이 북한의 불법적 행동의 반대편에 서고 이번 결의안 채택에 표를 던지기를 촉구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는 표결 전부터 예견됐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추가 제재가 현재 상황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아울러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표결 이후 공개 발언에서 "북한을 향한 제재 강화는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조치에 관한 인도주의적 결과에 있어 매우 위험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현재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복잡하다며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과 중국은 결의안 채택 무산 이후 공개발언에서 추가 발언을 거듭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 대사가 "이 이사회 회원국은 확산자들이 그들 행동의 결과에 직면하지 않도록 방어하기를 택했다"라고 발언하자, 장 대사가 이후 반박하고 나섰다.

장 대사는 추가 발언에서 "중국은 이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었다"라며 "이곳(유엔 안보리)에서 내려지는 모든 결정은 엄청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부른다. 바로 그 때문에 중국은 극도로 책임 있고 신중하게 투표권을 행사해 왔다"라고 했다.

장 대사는 또 "무언가에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지거나 표결에 불참하는 일은 이사회 회원국으로서 중국의 권리"라며 "중국의 입장은 독립적으로 결정되며, 미국의 입장과 일치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의 가까운 이웃"이라며 한반도 문제가 중국의 안보라고도 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이에 역시 추가 발언을 통해 "우리는 중국에 미국의 입장과 일치하기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미 동의한 안보리 결의안을 지지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오늘의 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가 비토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문제가 안보 위협, 우리 안보와 역내 파트너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중국과 러시아에도 안보 위협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라며 "그게 우리가 이 결의안을 진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했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 행동을 총회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 대사는 그러자 다시금 발언권을 얻어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군가가 현재의 한반도 문제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카드로 사용하고자 하는지, 그들이 한반도 문제 대응을 소위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체스판의 말로 활용하고자 하는지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국 입장은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라며 "다른 국가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입장도 변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전쟁의 불길을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계획을 추진한다면 중국도 "엄중하고 확고한 계획"을 추진하리라고 했다.

5월 한 달 안보리 의장국을 맡는 미국은 이달 중 북한 결의안 표결을 공언했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가 이달 초 의장국 취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관련해 이사회에서 논의 중인 결의안이 있다"라며 "결의안을 이달 중 진척시킬 계획"이라고 예고했었다.

미국이 준비해온 북한 관련 추가 결의안에는 연간 석유 수출 상한선 하향을 비롯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담배 수출 금지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 및 핵무기 운반 가능 시스템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과 일본도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지만 이해 당사국으로, 지난 11일 열린 북한 미사일 관련 안보리 공개회의에도 참석했었다. 일부 이사국은 이날 표결 이후 공개 발언에서 한국과 일본의 참석에 환영을 표하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한 조현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이번 결의안 채택 불발에 유감을 표하며 "이것이 북한과 다른 잠재적인 대량파괴무기(WMD) 확산자들에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처벌 없이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까 우려스럽다"라고 개탄했다.

조 대사는 이어 "이제 우리는 북한의 또 다른 핵실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동시에 평양은 핵무기 선제 사용을 위협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라며 이날 추가 제재안 부결이 북한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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