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삼박자 구원’으로 많이 알려진 유명한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기독교인이면 누구나가 익히 다 아는 내용이다.

삼박자 구원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 구절 속에 ‘영혼의 구원’과 ‘생활의 복’과 ‘건강의 복’ 세 가지가 다 들어 있다고 본다.

[2] 이 구원론은 순복음교회 뿐 아니라 한국교회 강단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삼박자 구원론을 한국교회의 기복신앙과 물량주의를 부추겨온 비성경적인 발상이라며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견인한 ‘전인구원의 신학’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이 구절은 과연 영혼과 육신의 건강과 범사에 형통한 복을 추구하는 삼박자의 복이 맞는 걸까?

[3]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원 저자의 의미가 살아있는 원어적 번역이 절실하다. 다음은 헬라어 원어를 참조해서 번역해본 내용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자신’(ψυχή)이 지금까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 있음(εὐοδοῦσθαι)과 같이 모든 일에 네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εὐοδοῦσθαι, lead along on a good path, guide well, prosper, succeed) 건전하고 바르게 살아가기(ὑγιαίνειν, be healthy or sound or be correct)를 내가 원하노라.”

[4] 다음은 국어실력이 발휘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 성경에서 ‘잘됨’과 ‘강건’으로 번역된 원어가 각기 분리된 내용이 아니라 둘 다 ‘범사에’란 단어에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을 알아야 한다. 이때 ‘범사에’는 ‘모든 일에 관하여’(περὶ πάντων, concerning all things)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모든 일에 관하여’ ‘잘되고’ ‘모든 일에 관하여’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5] ‘모든 일에 관해서 잘 되는 것’이란 말에는 어색함이 없으나 ‘모든 일에 관해서 강건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모든 일’은 문자 그대로, ‘범사’인데,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목회를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가릴 것 없이 그 모든 일에 있어서 강건하라’는 말이 논리가 통하는가 생각해보라. 육신에 관하여서라면 ‘강건한’(healthy)이라는 말이 의미가 통하겠지만 육신을 제외한 나머지에 있어서는 ‘강건한’이란 말이 전혀 연결되지 않음을 본다.

[6] 그럼 본문에서 저자가 가리키는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셋째로 문맥을 살필 줄 아는 실력이 발휘가 되어야 한다. 3절과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이 본문은 ‘가이오’라 하는 모범적 신앙인을 향한 요한의 소원을 나타낸 내용이다.

[7] 그럼 가이오의 모범적 인상인 진리 안에서 행한 일이 구체적으로 뭘까? 그건 5-7절에 나온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나그네와 이방인을 위해 사랑을 나눈 것’ 말이다.

[8] 그런 신실한 사랑을 전해들은 요한이 그가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바로 2절의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자신’(ψυχή)이 지금까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 있음과 같이 모든 일에 네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잘 인도되고 건전하고 바르게 살아가기(ὑγιαίνειν, sound or be correct)를 내가 원하노라.”

이게 본문의 원문과 전후문맥을 고려해서 정확하게 번역한 2절 말씀이다.

[9] ‘육신적으로 강건하기’를 뜻하는 말도 아니고 ‘모든 일에 강건하기’를 뜻하는 말도 아니고, ‘모든 일에 건전하고 바르게 살아가기’(sound or be correct)를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웬만하면 성경 본문 안에 어려운 난제들을 해결할 근거가 다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가이오와 같이 칭찬받는 모범적 성도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10]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우리 자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먼저 그런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겠다.

입술만(lip service)의 신앙이 아니라 주위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약하고 억울한 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여 그들로부터 사랑의 사도로 완전하게 인정받는 살아 역사하는 참 신앙의 사람으로 말이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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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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