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 세계관
1강을 맡은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청년부 담당)는 ‘뉴노멀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 교회를위한신학포럼:서울 유튜브 채널

이춘성 목사(광교산울교회 협동목사)가 13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도시와 도시, 그 역사와 의미’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목사는 “20세기 초기 역사관은 논리 실증주의에 영향을 받아 실증주의 사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역사 실증주의는 기록된 역사가 실제 사실이었느냐를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20세기 중후반의 역사관은 모든 역사 기록이란 당대의 관점으로 해석된 역사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게 된다. 사실을 찾는 것보다는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라며 “이를 주관주의 사관, 혹은 역사 수정주의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역사는 승자의 역사’ 또는 ‘역사란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라는 주장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결국, 사실보다는 주관적 해석과 남은 자들이 만든 주류적 의미가 역사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을 실증 가능한 역사로만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기적에 대한 기록은 실증과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또한, 성경을 우리의 주관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단 사이비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바른 해석이 필요한 책으로 대해야 한다.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고대의 역사 서술 방식을 이용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사진과 영상 기록과 같은 방식이 아니기에 현대적 사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부족하나 당시의 사실 기록 방식에 따르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의 사적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스스로 해석의 가이드를 가지고 있다”며 “그 자체로 해석의 방향과 의미를 읽은 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 해석의 틀을 발견하고 이용하는 것이 사실을 바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창세기의 전반부는 인류의 탄생과 타락의 과정을 다루는 원역사에 관한 서술이다. 주로 창세기 1~11장이 이 내용을 포함한다”며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가인과 아벨이 태어나고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를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거절하신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가인은 저주를 받아 에덴 동쪽 ‘쉼 없는 땅’이란 뜻의 ‘놋’에 거주한다. 가인의 후손들은 땅의 이름처럼 쉼 없이 일했다. 쉼 없는 땅이라는 이름의 뜻이 의미하듯 가인이 거주한 땅, 놋은 가인이 지닌 근본적인 두려움과 불안에 기인한다”고 했다.

이어 “가인은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도시를 만든다(4:17).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도시이자 성인 ‘에녹 성’이다. 이후 이 도시를 거점으로 가인의 자손인 야발은 목축의 기술, 유발은 음악, 두발가인은 금속 세공과 기계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라맥은 전쟁 기술을 발전시켰다”며 “이렇게 도시와 도시 속에서 발전시킨 문명과 기술을 통해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불안을 해결하고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얻었던 평안과 안정을 얻고자 하였다. 도시는 이들 속에 있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도시는 가인의 후손들에게는 새로운 에덴의 건설이었다. 이 새로운 에덴이 바로 가인이 세운 최초의 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하나님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창세기는 바벨탑 사건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시의 부정적인 측면만 소개하고 있다. 소돔, 고모라 등의 도시들이 나오며, 이와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은 도시 밖에 거주하면서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며 “아브라함은 의도적으로 도시를 거부한다. 그러나 도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삭의 아내를 찾는 사건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한다”고 했다.

이어 야곱을 언급한 이 목사는 “야곱은 자던 중에 놀라운 꿈을 꾸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야곱에게 들려주시고 약속하신 것이다(창28:12~15). 깨어난 야곱은 이곳이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집(벧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곳은 아브라함이 섞이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던 가나안 지역의 루스라는 도시였다. 가인의 도시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집을 찾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야곱이 루스에서 발견한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도시가 가인의 도시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야곱이 한 행동은 자신이 노숙하면서 베개로 삼은 돌 하나를 그 땅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첫 벽돌이었다”며 “그리고 하나님의 도시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을 제거한 인간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도시 한 가운데에서, 야곱이 돌 하나를 세우고 여기가 하나님의 도시라고 선언한 것, 그것이 하나님의 도시의 출발이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도시는 강력한 세상의 도시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야곱의 가족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되었고, 다시 세계로 흩어져서 하나님을 믿는 무수한 사람들과 교회로 성장했다”며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계속된다. 이 하나님의 도시의 특징은 첫째로 문명과 시스템으로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인의 도시는 문명과 시스템으로 견고하게 디자인된 기계적 안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시는 그 출발인 벧엘이 의미하는 것처럼 도시이기 전에 집이었다. 그 정체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시는 시스템이기 전에 인격이며, 기계적 결합이 아닌 유기적 결합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도시에 속한 모든 자들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우는 모든 공동체에 적용된다. 인격의 공동체, 유기적 영적 연합의 공동체가 교회이며,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님의 도시의 두 번째 특징은 세상의 도시를 하나님의 도시로 바꾸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의 도시는 하나님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진행이다. 세상의 도시는 그 특성상 하나님을 그들의 도시에서 철저히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이들의 불안의 근본 요소이기 때문”이라며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모두 제거하고 스스로 자멸하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다만 여전히 우리가 강력한 세상의 도시 한 가운데에서 야곱처럼 작디 작은 돌 하나를 세우고 하나님의 도시를 짓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사람들이 더 큰 도시와 더 위대한 문명과 기술을 추구하는 근원에는 인간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진짜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였다”며 “우리가 이 세상의 도시 한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는 이유는 마치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창 6:8) 하나님의 가족들의 정체성이며,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시가 나약한 모습으로 세상의 도시 한 가운데 서 있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이름 외에는 어떤 것도 인간을 불안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는 방법에 나약함,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약함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이춘성목사 #광교산울교회 #복음과도시 #칼럼 #하나님의도시 #2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