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정확히 읽기
 ©도서 「역사서 정확히 읽기」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스라엘 심판을 위해 다윗의 범죄를 끌어들이셨을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사탄을 통해) 부추기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에 대해 징계'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다(삼하 24:1a-1b). 사무엘하 본문은 무슨 죄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단지 이스라엘을 치시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만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시려는 근원적 이유는 다윗의 인구조사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솔로몬은 그저 백성 중의 한 부자가 아니라 왕이었다. 왕이 천 마리 양을 바치는 게 뭐가 대단한 정성이 되겠는가? 가난한 사람이 1억 헌금 드리는 게 힘에 부친 정성이지 재벌이 1억 헌금하는 게 대단한 정성은 아닌 것과 같다. 여기서 천이라는 숫자가 숫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수를 뜻하는 상징적 단어라도 상관없다. 파산할 정도로 재산 전부를 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권혁관 - 역사서 정확히 읽기

초대형교회에서 제자삼기운동으로
 ©도서 「초대형교회에서 제자삼기운동으로」

들여다보니 안디옥 교회에서 말씀 선포를 한 건 바울 혼자가 아니었다. 바나바가 바울과 나란히 설교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만 안디옥에서 설교한 것도 아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단지 바울과 바나바와 그 외 '소수의' 사람들이 설교한 게 아니었다. 바울, 바나바, 그리고 "수다한" 다른 사람들이 설교했다. 원어에서 "수다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많은 수'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은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설교하고 가르쳤다. 단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도행전 구절에는 안디옥 교인들이 불평했다는 언급이 없다. 교인들이 바울만 강단에 세우라고 요구했다는 말도 없다(그랬다고 해도 너무나 타당한 요구 아니겠는가,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바울'인데!). 바울이 설교를 그만두자 교인들이 우수수 떠났다는 말도 없다. 왜 그랬을까? 그건 사람들이 메신저(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보다 메시지 자체에 더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에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었다! 사람들은 메신저가 누구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다!

크리스 갈라노스(저자), 손현선(옮긴이) - 초대형교회에서 제자삼기운동으로

교회에 관한 오해와 진실
 ©도서 「교회에 관한 오해와 진실」

최근 들어 목회자의 심각한 과오나 부도덕, 비윤리적 행위로 기독교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해당 목회자를 감싸며 여전히 충성을 바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그것이 잘못된 교회론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교회론은 무엇인가? 교회는 '전우주적 교회'와 '지역교회' 두 가지 개념으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전우주적 교회는 시공을 초월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만 한정된 추상적인 개념인 반면, 지역교회는 특정 시대와 특정 지역에 실질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무리로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이병하 - 교회에 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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