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임하는 사람
 ©도서 「말씀이 임하는 사람」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결정적 순간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빛이 납니다. 소유와 타고난 재능이 아닌,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말씀이 혼돈의 시간을 뚫고 나갈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매일 직접 하나님 말씀과 대면하며,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말씀의 힘"을 영혼에 축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좋은 설교를 찾아 많이 듣는다고 그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주체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실천의 노력을 하는 과정이 창조적으로 선순환하면서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쌓여야 단단한 신앙이 됩니다. 저는 이 큐티의 과정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특강의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깊이를 더하기 위해 구어체 그대로 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큐티의 전 과정을 소화할 수 있게 하여 큐티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말씀을 보는 눈을 열어 드리고자 했습니다.

구현우 - 말씀이 임하는 사람

교회를 웃게 하는 섬기는 장로
 ©도서 「교회를 웃게 하는 섬기는 장로」

장로는 목회 동역자인가, 암적 요소인가? 장로는 목사와 한 팀인가, 적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목회 동역자이자 한 팀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정치 <제5장 1조>에 장로직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율법시대에 교회를 관리하는 장로가 있음과 같이 복음시대에도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세웠으니, 곧 치리장로이다.' 4조에서도 장로의 직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치리장로는 교인의 택함을 받고 교인의 대표자로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지교회 혹은 전국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한다.' 목사와 장로는 협력하는 관계이다. 그렇기에 장로는 목사와 잘 협력해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목사와 장로 간에 팀워크가 잘 이뤄진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목사는 장로를 휘어잡으려 하고, 장로는 목사를 견제하고 감독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사건건 목회에 간섭하고 거부권을 일삼는다. 결국 교회는 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장로는 교회 부흥과 목회에 암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김병태 - 교회를 웃게 하는 섬기는 장로

슬로우 영성
 ©도서 「슬로우 영성」

우리 문화에서는 "느리다"(slow)가 경멸의 표현으로 쓰인다. 우리는 아이큐가 낮은 사람을 느리고 둔하다고 놀린다. 웨이터가 느리면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불평하고, 영화 전개 속도가 느리면 지루하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슬로우"(slow; 느리다)라는 영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신적으로 굼뜨다. 어리석다. 천성적으로 활동력이 없거나 게으르다. 재빠르지 못하거나 의지가 부족하다." 우리 문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느린 것은 나쁜 것이고 빠른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거꾸로 나라에서는 가치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다. 바쁨은 사탄의 속성이고 느림은 예수님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나라의 다른 두 핵심 속성인 기쁨과 평안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나라 비전의 중심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이는 마음의 전반적인 상태다. 이는 단순히 좋은 감정 정도가 아니라,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구현하신 예수님을 따를 때 닮아 가는 내면의 상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모두 바쁨과 양립할 수 없다.

존 마크 코머(저자), 정성목(옮긴이) - 슬로우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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