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기독일보는 1970~80년대 한국 축구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오석재 선교사님의 신앙과 삶을 4회에 걸쳐 나눕니다. 오 선교사님은 1978년 축구 인생의 절정에서 위기를 맞았고 어둠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후 복음 전파에 헌신했습니다. 1980년대 할렐루야 축구단에서 축구를 통한 선교 활동을 펼쳤고 1989년 은퇴와 함께 예장고신의 선교사로 인도네시아에 파송됐습니다. 이후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미국 등지에서 목회와 축구 선교를 병행했고, 현재는 인도네시아 유소년 축구팀을 양성하며 한국 축구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축구 선수 오석재, 선교사로 헌신하다

오석재 선교사
1980년대 한국 축구 간판 스트라이커였던 오석재 선교사와 김혜경 사모 ©오석재 선교사
화려한 경력으로 축구 선수로서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 선수생활을 은퇴를 하고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동기는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야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 한국 국가 축구 대표 선수로 발탁이 되어 그 당시 대표팀에 제일 어린 선수로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경기대회 출전하여 축구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개인적으로도 최고 득점상과 대회 최고 선수로 매스컴에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그 후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정점을 찍었을 때 축구선수에게 있지 말아야 할 불행스러운 일이 닥쳐왔다. 어느날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운동을 쉬다가 계속되는 통증으로 인하여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후 운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이제 축구를 통해서 인생의 성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다가 왔건만 포기해야 하는 심정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이 허무했다.

의사가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말에 도무지 축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라던 내 인생의 성공이 축구를 통하여 눈앞에 놓여 있는데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기에 수술을 포기하고 아픈 허리 치유를 위해서 온갖 치료와 약을 처방하여 먹었지만 회복 할 수가 없었다.

약1년이라는 긴 시간을 부상의 늪 가운데 지내다 보니 선수로서 다시 재기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나를 괴롭혔고 또한 저에 대한 사실이 아닌 온갖 좋지 못한 나쁜 루머가 축구계를 통하여 매스컴에 돌기 시작했고, 잘못된 루머로 인하여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순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내 자신이 나도 모르게 매우 신경질적이고 거친 행동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을 보게 되면서 더 실망하게 되었다.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그때부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런 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 날 신문에 저의 대한 투병 기사가 실렸는데 마침 모교인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님으로 계셨던 오혜식 교수님이 그 기사 소식을 접하고 남편과 함께 저가 머물고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찾아 오셨다.

오 교수님께서는 위로의 말씀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과 치유와 회복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다시 운동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허리 치유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셔서 함께 합심기도 하여 16일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치유로 인하여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불같은 마음이 일었다.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와 같이 전도하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이 불길처럼 타올라 기숙사에서 함께하는 운동선수들을 전도해 단숨에 20여명이 예수님을 믿게 됐다. 또 대학교 기숙사에는 성경공부반 그룹이 만들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 후 전도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되었고 운동 후 시간만 나면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만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생활이 일상화 되었다. 그리고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은 무엇일까?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석재 선교사
인도네시아에서 축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오석재 선교사 ©오석재 선교사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 즉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전도에 열심을 냈고, 은퇴 후에는 축구를 통해 타 문화권에 선교사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도하는 일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더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개인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고 갈 수 있는 타 프로 축구단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다. 1983년 돈과 명예를 포기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할렐루야 프로축구단에 입단하여 전도하는 일에 젊음을 제물로 드렸다.

1989년 은퇴 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왔지만 단번에 거절하고 예장 고신 평신도 스포츠 선교사로 헌신하여 약 1년간의 선교사 훈련을 마친 후 1990년 12월에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아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에게 과거의 정말 아까운 오석재 축구선수가 홀연히 축구계에서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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