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좀 전에 노숙인 사역을 하는 분이 노숙인 예배에 참석하는 형제의 글을 페북에 올려서 소개한 걸 읽어보았다. 그의 어려운 형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추운 겨울인지라 걱정도 커진다. 내용을 보니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사로의 현대판 인물인 듯하다.

그 내용을 소개해보자.

<나사로 이야기>

오늘도 누군가 내 박스 집에 찾아와
머리맡에 빵 하나, 두유 하나 두고 갔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고맙다.
건너편 A가 얼마 전에 죽었다.
그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 길을 혼자서 갔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누군가 내 박스 집에 찾아와
내 차가운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노숙자인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기도해주면 좋겠다.
차가운 바람이 내 박스 집을 부수고 간다.
이럴 땐 쪽방 B도 부럽고
고시원 C도 부럽다.
다시 박스집을 고치고 누우려는데
찬바람이 다시 또 내 박스 집을 부수고 간다.
아.....
박스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오늘은 예배드리러 가봐야겠다.
주정뱅이 김씨도
욕쟁이 박씨도
싸움꾼 이씨도
예배에 나오면 좋겠다.

[2] 글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박스 집에 사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노숙자로 살 사람이 아닌 듯 해보이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몇 평 되지 않는 집에 산다고 불평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이 형제의 형편에 비하면 사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5년 전쯤, 어느 주일날 경험한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주일 오전예배를 마친 후 교역자실에서 쉬고 있는데, 여전도사님이 예배에 처음 참석한 노숙자 한 사람을 데려왔다.

[3] 담임 목사님을 만나러 온 것인데 연락도 안 되고 찾아도 보이질 않으니 우리 방에 데려온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소리를 친다. “내가 노숙자라고 담임 목사님이 날 피한 거 같은데 빨리 만나게 해주란 말이야!” 앉았다 일어섰다 고함을 치면서 행패를 부리는데 여전도사님과 부목사님이 아주 힘들어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대화를 시작했다. 살살 달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렸더니 자기 속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4] 젊을 땐 군에서 군종병으로 사역할 정도로 신앙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부대서 근무했냐고 물었더니 다 털어놓는 것이었다. 잠시 듣고 있던 내 입에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말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이름 뭐야?” 여전도사님과 부목사님이 깜짝 놀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노숙자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더니 “당신 뭐라 했어? 목사가 성도한테 말을 놔? 너 오늘 한 번 죽어봐라!” 하면서 일어서서 나를 때리려 했다.

[5] 순간 그의 손을 가로막으면서 내가 말했다. “야, 나 신성욱 병장이야. 대대군종병 신성욱 병장!” 그랬더니 내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던 그가 “아니, 정말 신병장님이십니까? 야 정말 이럴 수가 있나요? 어찌 여기서 신병장님을 만난단 말입니까? 너무 반갑습니다!” 하면서 나를 와락 끌어안는 것이었다. 이 희한한 장면을 보고 있던 두 사람도 놀라서 같이 일어선다. 그랬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6]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근무했던 부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는 중대 군종병이었던 후배였다. 제대 후에 처음 만난 것이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기 그지없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 복학해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직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 다 털어먹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폐병까지 와서 고생하다가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7]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너무 배가 고파서 우리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당시는 나 역시 시간 강사의 신세로 주머니에 돈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일 예배 직전 권사님 한 분이 방에 오셔서 봉투를 하나 주고 가셨다. 열어보니 20만 원으로 큰 액수였다. 모처럼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기분이 좋았는데, 군종병 후배를 만나고 보니 그 돈은 그 친구에게 주라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음이 깨달아졌다.

[8] 봉투를 손에 쥐어준 채 너무 힘들 땐 찾아오라고 하면서 후배와 작별했다. 이후로 너무 자주 찾아오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었는데 더는 찾아오질 않았다. 그때 그 20만 원이 그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찾아오지 않은 걸 보니 형편이 나아진 것 같다. 우리 주변에 노숙자 A나 후배와 같은 이가 한 둘이 아니다. 날씨가 점점 차가와 지는데, 집 없이 길 위에서나 박스 속에서 잠자는 이들은 얼마나 추울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9]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살았던 이웃 중 이웃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 가까운 거리를 사랑과 배려로 메우지 못했을 때, 사후 세계에선 천국과 지옥이란 메울 수 없는 큰 구렁을 경험하고 말았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6, 한글 개역)

[10]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나사로나 노숙자 A와 내 후배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아주 가까운 거리를 구제와 베풂으로 여기서 메우지 못했다가 사후세계에서 그들과 우리 사이에 메우지 못할 천국과 지옥의 큰 구렁을 경험한다면 어떡하겠는가?

오늘 절실한 사랑과 배려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이 시대 여러분의 나사로는 누구인가?
그를 찾아서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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