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 이하 NCCK) 언론위원회(위원장 권혁률)는 10월의 시선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에 바라본 오늘의 전태일들>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선정취지로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임금이 삭감돼 고통을 받는 국민이 많아졌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달라지지 않아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택배노동자가 14명에 달한다. 노조 조직률은 10% 남짓에 머물러 단체협약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절반에 가깝다”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1970년 11월13일 22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외친 말”이라고 했다.

이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살아 있으면 72살의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젊은 청년의 피 끓는 외침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청계천에 울려 퍼진다”며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가르쳤다.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를 모르고 기계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바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1일 작업시간을 14시간에서 10~12시간으로 단축하고, 1개월 2일 휴일을 일요일마다 쉬도록 희망했다. 시다공의 수당 70~100원을 50%이상 인상해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1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올려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였다. 그러나 탄원서는 박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며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했다.

NCCK 언론위는 “대학생들은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데 앞장섰다. 일부는 공장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노동운동도 활기를 찾아 곳곳의 현장에서 파업과 농성이 이어졌다. YH무역 노조의 신민당사 점거농성은 무참하게 진압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조였던 셈”이라며 “전태일 열사의 활동은 유일하게 경향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전태일은 바보회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을 규합하여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활동한다. 1970년 10월 6일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실태 보고서 ‘평화시장 근로개선 진정서’가 노동청에 제출됐다. 설문지 126장이 첨부됐다. 2평 작업장에 15명씩 몰아넣고, 폐결핵 신경통 위장병을 달고 살며, 각혈하는 16세 소녀에게 피로해소제 주사를 놔 밤새 특근시키는 무법천지가 담겼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 경향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을 보도했다. 당시 정부 소유 신문으로선 이례적이었다. 10대 노동자 3만 명이 혹사당하는 청계천 일대 피복공장 실상이 처음 알려졌다.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정부는 국정감사 중에만 몸을 낮췄고 문제해결을 약속한 업주들은 답이 없었다”며 “이후 정재계는 그들의 활동을 사회주의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이러한 색깔공세는 전두환 정권까지 독재정권 시절 내내 지속됐다”고 했다.

아울러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문제를 다룬 보도는 드물었다. 임금인상이나 노동현장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작게 취급됐다. 결국 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노동자들은 극한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위험을 감수하고 1년 넘게 고공농성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산업재해나 과로로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등 파급력이 큰 사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이들은 “전태일의 산화(散華)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외침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현장 노동자 10명중 4명은 근로기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1997년 새 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 24번 개정됐다”며 “5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마저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의 상황이다. 구의역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그랬듯 이들 중 하루에 7명이 산재로, 1명이 과로사로 죽는다. 법 밖의 노동자, ‘위험한 전태일들’은 50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14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추정)로 세상을 떠났다(10월 30일 현재, 언론보도 집계). 이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주 평균 71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재벌 택배회사들이 이들에게 분류작업의 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택배물량이 늘어나면서 택배노동자의 고통은 급격하게 상승했다”며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산업재해왕국이라는 오명은 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NCCK 언론위는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죽어간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다. 2015년부터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뒤인 2019년 8월까지 산재노동자 271명중 98%인 265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있다”며 “‘위험의 외주화’는 김씨 사망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씨가 숨진 뒤 28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법은 반쪽짜리 법에 머물고 말았다”고 했다.

더불어 “한국사회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매일 7명 정도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데도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불감증’ ‘또다시 인재’ ‘책임자 엄벌’ 등의 구호가 난무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뿐”이라며 “노동계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정기국회에서 ‘전태일 3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전태일 3법은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법 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법안”이라고 했다.

또 “근로기준법 개정은 적용범위를 명시한 11조가 대상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노동조합법도 개정 대상이다. 현행법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전태일 3법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50년 전 청년 전태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불길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노동기본권은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노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 재산축적을 위한 자본권력에 고용된 것은 아니다. 시뻘건 화염 속에 사그라진 전태일 육신은 청계천 그 자리에 동상(銅像)으로 부활했다”며 “그의 영혼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다. 그의 죽음과 맞바꿀 만큼 간절했던 소망이 이루어져 동상으로의 부활이 아닌 합리적인 법과 제도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것이 2020년 10월 시선 선정의 이유”라고 했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대기자, 김덕재 전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주언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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