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예레미야 43장 1-13절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단어가 있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축약어이다. 답정너의 사전적 의미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똑같은 말을 물으며, 상대가 자신의 대답에 수긍할 때까지 압박을 가해 의도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나와 있다. 요즘 언론매체를 보면 답정너들이 많아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다. 국회나 청문회에서 어떤 질문을 하던 그들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정해 놓은 답을 상대가 받아들이면 사리에 밝다고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도 모르냐며 오히려 모욕을 준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무리도 여지없는 ‘답정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답정너의 심각성은 사람들에게만 답을 강요하지 않고 하나님께도 “답은 정해져 있으니 당신은 대답만 해”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남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불안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요청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어 봐 주면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10일간의 기도의 시간을 갖고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전해 주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여전히 유효하니 애굽으로 가지 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답정너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2절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처음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까지 거짓이라고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애굽으로 간다는 답을 정해 놨는데, 예레미야가 딴소리를 하니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3절에 보면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죽이며 베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바룩이 자신들을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어 죽이려는 음모라고 몰아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거짓이라 치부하고 또 무고한 사람까지 마녀사냥 한 것인가? 2절에 보면 ‘오만’ 때문이었다. 오만이라는 단어는 “거만”, “주제넘음”, “건방짐”을 뜻한다. 하나님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자가 없다. 그 어떠한 죄라 할지라도 용납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용납받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다. 오만한자이다. 하나님께 건방진 자들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열심히 했지만 실력이 없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가진 게 좀 있다고 건들 되거나 오만방자하게 행하는 자들은 용서가 안 된다. 답정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뛰어난들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뜻을 버려야 하건만 “답은 정해져 있으니 당신은 대답만 하면 돼”라고 협박까지 하고 있으니 절대 용서되지 않는 고집불통의 모습이다. 결국 답정너들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예레미야를 애굽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예레미야를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둘 수 있지만 하나님을 가둘 수 없듯이 예레미야의 입을 틀어막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막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큰 돌을 가져다가 바로의 궁전 대문에 감추라고 명령하셨다. 그 행동은 바벨론 왕이 와서 애굽을 멸망시키고 감춘 돌 위에 바벨론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결국 하나님은 11-13절까지 답정너들이 그토록 의지했던 애굽은 칼에 죽고 신당은 불태워지고 석상은 부서지게 될 것이라고 선고하셨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의 결말은 처참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불순종의 뿌리에는 오만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토록 애굽을 가고자 했던 이유는 하나님보다 애굽이 더 큰 안전지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만함이었다. 사실 당시 애굽은 유일하게 바벨론의 영향권 밖에 있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가면 자신들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보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애굽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성경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유일한 해답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어두운 긴 터널이 끝나게 되면 허와 실이 드러날 것이다. 옥과 석이 가려질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참 신앙이 회복되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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