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면담 당시 모습. ©제주도청

제주평화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도민 대표단이 2일 오전 제주도청을 방문해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대표단은 도민 여론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헌장이 ‘깜깜이’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전면 폐기를 촉구했다. 같은 날 오후 도청 앞에서는 시민·종교·학부모 단체가 참여한 ‘가짜 제주평화인권헌장 폐기 촉구 국민대회’가 열려 갈등이 더욱 고조됐다.

제주도민연대 이향 대표와 제주거룩한방파제 이정일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도민 대표단은 이날 면담에서 “헌장 초안에 종교·사상·정치적 의견·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이 포함돼 사실상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며 “이는 가정과 교육현장, 청소년 보호체계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대표단은 특히 최근 발표된 제주도민 여론조사를 근거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민의 66.9%가 ‘헌장을 잘 모른다’고 응답했으며, ‘반대’ 의견은 48.3%로 ‘찬성’ 18.8%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도민의 75.7%는 헌장이 “도민 몰래 조용히 추진된 것 같다”고 답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두고 대표단은 “도민 10명 중 7명이 내용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헌장을 강행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행정”이라며 “도정이 아닌 특정 단체의 요구에 의해 정책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영훈 지사는 헌장 추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오 지사는 “4·3 당시 이념적 편견과 언어·문화적 차별로 희생된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선언적 의미”라며 “같은 국민임에도 차별로 인해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표단은 헌장의 역사적 맥락과 실제 내용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한 참석자는 “4·3과 인권 문제를 연결하는 것은 정치적 포장일 뿐, 현재 초안에는 차별금지법을 연상시키는 조항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제주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방식을 밀어붙이면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단어로 갈등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 지사는 또 “제정위원회와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가 장기간 논의를 거쳐 마련한 안으로, 법령에 따른 절차를 거쳤다”고 강조하면서도 “오랜 기간 시위를 이어온 분들의 우려를 가볍게 보지 않고 있으며, 행정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표단은 이러한 설명에도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대표단은 “도민사회 다수가 반대하고 여론조차 부정적인데도 도정이 추진 의지를 고수하는 것은 행정의 자기 목적화를 보여준다”며 “이미 3만 3천 명이 반대 서명에 참여한 만큼, 도정이 즉각 폐기 결정을 내려 도민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열린 ‘가짜 제주평화인권헌장 폐기촉구 국민대회’에는 제주도민연대, 제주기독교총연합회, 학부모단체, 청년·여성단체 등 30여 개 단체가 참여해 헌장 제정 중단과 폐기를 요구했다. 단체들은 “제주평화인권헌장이 대한민국 최초의 차별금지법 실험장이 될 수 있다”며 “도민 의견을 무시한 채 추진되는 모든 절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제주도청은 여론의 거센 반발 속에서 헌장 제정 절차를 재검토할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폐기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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