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간다. 아침 눈을 뜨면 스마트폰 화면이 먼저 말을 걸고, 길을 걸으며 이어폰 속 영상이 시간을 채우며, 저녁이 되면 게임과 TV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손끝 하나로 무한의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사유의 깊이를 잃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짧은 영상, 게임의 즉각적인 자극, TV의 빠른 전환은 우리의 눈은 열게 했지만, 마음의 문은 닫게 했다.
정보는 넘치지만 지혜는 줄어들고, 말은 많지만 생각은 얕아졌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선현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었고, 지혜를 얻기 위해 문장을 곱씹었고,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해 보배로운 글들을 베껴 썼다.
그들에게 독서는 지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필사’(筆寫)는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정제하는 의식’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선현들의 사유를 빌려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필사란 그 사유를 손끝에 새기고 자기 마음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깊게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속 자극은 빨리 지나가지만, 한 권의 고전과 한 줄의 필사는 우리의 뿌리를 깊게 만든다. 스마트폰은 하루를 채우지만, 고전은 삶을 채운다. 게임은 순간을 남기고, 필사는 생각을 남긴다. TV는 소리를 퍼뜨리지만, 독서는 내면의 목소리를 깨운다.
젊은이들의 시대는 너무 빨라서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멈춤이 바로 독서이고, 그 머묾이 바로 필사이다. 지금 손에 쥔 화면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한 권의 고전을 들어보라. 선현들은 우리보다 먼 시대에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말을 건다.그리고 그들의 문장을 따라 써 보라. 한 줄을 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타인의 지혜가 우리의 사유가 되는 순간을 만날 것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빨리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마음을 밝혀 주는 깊은 빛이다. 그 빛은 내 손 안의 화면이 아니라, 내 손과 눈과 마음을 통해 천천히 들어오는 책 속에 있다.
고전을 가까이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사다. ‘필사’란 ‘문장을 읽고 손으로 베껴 쓰는 것’이다. 우리가 필사해야 할 보배롭게 빛이 나는 위대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날마다 우리가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이나 게임이나 TV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논어』, 『도덕경』, 『목민심서』 같은 동양 고전에서부터 『데미안』, 『레 미제라블』, 『어린 왕자』, 『침묵의 봄』 등 서양의 인문 및 문학 고전까지 우리 마음과 영혼을 영롱한 다이아몬드처럼 빛내줄 보고들이 넘쳐난다.
이런 고전 속 명문장들을 읽고 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문장 속에서 자기 문제를 비춰 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
한 문장을 곱씹으며 쓰는 동안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전의 생각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고력과 문해력이 자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깊어지게 됨을 경험할 것이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쓰면서 생각하라. 성현들의 보배로운 문장들을 한 꼭지씩 읽고 쓰다 보면 문장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언어로, 언어가 태도로 이어진다.
작품 전체의 핵심을 담고 있고, 오늘의 삶에 지혜와 통찰을 건네는 명문장을 책 속에서 골라라. 삶의 태도를 바꿔줄 한 문장, 고민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단서 같은 한마디를 찾아서 읽고 써서 마음에 새겨두라. 하루하루 쓰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고전의 지혜가 나만의 언어로 바뀌어 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읽고 쓰고 사고하는 과정에서 문해력과 표현력이 배양됨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한 문장이 있다. “당신은 단지 자신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한 번 존재하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이 문장은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다는 뜻이다. 각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 경험, 성품, 그리고 삶의 목적을 가진 하나의 독특한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우울증이나 절망에 빠져서 생을 포기하거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위의 문장은 새로운 도전과 소망과 용기의 말이 될 것이다. 위 문장이 주는 교훈은 비교와 모방에 빠지기보다 자기 안에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남처럼 되려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개성을 빛내는 것이 진정한 성장과 행복의 길임을 일깨워 준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