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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램스덴(라비 국제 사역(RZIM) 대표)이 로마서 8장을 중심으로 ‘말씀의 증인이 되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TGC 코리아

게티뮤직 경배와 찬양 컨퍼런스 ‘씽! 글로벌 2020’이 미국 현지 시각 지난달 30일부터 9월 2일까지 일정으로 진행된가운데 한국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TCG코리아가 이 컨퍼런스의 강연을 1일부터 5일까지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3일 오전에는 마이클 램스덴(라비 국제 사역(RZIM) 대표, 신학 변증 옥스퍼드 센터 설립자)이 로마서 8장을 중심으로 ‘말씀의 증인이 되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마이클 램스덴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엄청난 절망과 힘겨운 시간에 어떻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려 한다. 다른 성경 구절보다 지금의 시기에 더 적절한 본문은 로마서 8장이다. 로마서 8장에는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로마서 8장에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한다”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전에는 확신한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편안함을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신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했다.

이어 그는 “어려움, 곤고, 고통, 죽음, 그 밖의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면 하나님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이런 일들이 언제 끝날지 아니면 나아질지에 대해 알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다면 그분 안에 있는 우리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앞을 내다볼 때 엄청난 용기와 희망을 준다”고 했다.

마이클은 “로마서 8장에는 우리에게 특별한 구절들이 있다. 로마서 8장 37절, 38절에서 성경은 ‘우리는 모두 넉넉히 이기는 자’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땅과 하늘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 밖에 무엇이든지 권세자들이나 능력이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며 “지난 2월부터 영국은 통제에 들어갔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들을 조금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됐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 때문이다. 37절 38절에 나오는 ‘넉넉히 이기는 자’라는 이 말씀은 어려움이 없던 시기에 주신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큰 어려움이 있는 시기에 주셨다. 8장 36절을 보면 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삶이 도살당할 양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넉넉히 이긴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또, 이 구절 이전에도 또 다른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한 구절 더 전으로 가보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35절에서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 구절을 몇 달 전에 보았을 때 그전에는 보지 못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는 것들의 목록이다. 이 목록들을 보면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목록의 처음 두 단어는 두 가지 해석을 담고 있다. 꼼짝 못 하게 둘러싸인다는 뜻과 폐쇄된 곳에 갇힌다는 뜻이다. 이 둘은 어떤 식으로든 통제된다는 말이다. 이 두 단어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유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구석에 몰린 느낌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어떤 성경 번역은 첫 번째 단어를 ‘환난’으로 번역했는데 그건 동물을 코너로 몰았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꼼짝 못 하게 둘러싸이게 된다면 당연히 고초를 겪게된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지금 이것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제한되고 괴롭고 갇힌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고 싶다. 갇힘과 통제 가운데서도 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을 아는 것은 가능하다. 이 모든 일들 가운데 우리는 견뎌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위한 힘을 주실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 로마서 8장은 박해와 반대의 엄청난 어려움의 시기에 쓰여졌다”고 했다.

그는 “수년 전에, 레슬리 뉴비긴은 ‘우리는 점점 더 의무보다는 권리를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논평을 남겼다. 우리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이 자기애적으로 된다. 전형적인 표현인 ‘행복추구’만 보더라도 이 표현은 몇백 년 전에 사용됐다. 그것은 개인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2백 년 전만 해도 행복추구를 논하는 것은 공익에 대한 것이었다. 사회 전체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였다. 행복의 추구, 공익의 추구는 개인에게는 큰 희생일 수도 있고 생명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공익을 위해서 개인이 큰 봉사를 해야 될 수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를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는 대신에 그 질문을 ‘누가 이웃으로서 행동하였느냐’로 재정의하셨다. 누가 바르게 행했느냐가 아니라 베풀어야 할 자에게 네가 실제로 이행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말씀으로부터 멀어졌다. 내가 누구한테 의무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실제로 나서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십리를 동행할지 목숨을 내놓고 포기하고 주며 섬길지 말이다. 우리는 점점 더 우리 자신만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의무보다는 권리를 생각하게 될 때 그 결과로 우리는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권리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보장해 달라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우리는 정부에게 우리의 안전을 기대한다. 공포와 가난 부족한 것들과 질병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세대는 정부를 바라본다. 이전 세대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던 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정부가 하나님이 되길 기대한다면 실행하거나 견뎌낼 수 없는 짐을 지우게 될 뿐이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냉소주의를 낳는다.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공직에 올라서기 위해서 하겠다고 약속하곤 실망시켜 버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겸손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로마서 8장에서 배운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걸 아시고 책임지시고 역사의 흐름을 지시할 수 있으시며 진정으로 우리를 매우 많이 사랑하신다. 자신의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주셨다. 그 실제적 죽음과 몸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올지라도 어떤 갇힘과 통제를 받을지라도 칼로 죽임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끊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분이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하신 일로 우리에게 소멸하지 않고 썩지 않고 점점 희미해지지 않는 소망을 주셨다. 이것이 우리가 노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엄청난 시기에 위대한 용기를 준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이다. 용기는 담대한 느낌만은 아니다. 아무런 걱정이나 위협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구별된다. 본질에서뿐만 아니라 출처에서 다르다. 성경은 그 용기와 힘은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지속해서 가르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를 이길 힘과 용기를 주실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자유를 준다. 괴롭고 절망 되는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의 염려를 다 주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하나님의 온유한 손길에 우리의 삶을 맡기고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행위의 동기와 모든 행동이 사랑인 이유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겁먹은 듯이 행동하며 살고 있다. 자가격리를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차단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지 않다. 레위기에도 나와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격리와 인간적 격리에는 차이점이 있다”며 “지금 현재 세계의 인간적 격리는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있다. 우리에게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다. 레위기에서 명령된 성경적인 방식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스스로 진영 밖으로 나가는 걸 말한다.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퍼트릴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진영 밖으로 나올 것이다. 당신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목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동기로 나오는 행위와 사랑의 동기로 나오는 행위는 이 세상과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인다. 지금 우리는 많은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적 사랑을 되찾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셔서 다른 이들에게 흐르도록 하신 그 사랑.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두려움으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일을 생명과 사랑으로 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내려놓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정말 잃는 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성경의 약속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도 멸망하지 않는다. 먼저 떠난 이들을 다시 볼 때가 올 것이다. 그들과 다시 재회할 것이다. 그러니 상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목숨에 대한 상실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님을 볼 것이고 그분과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약속은 격려와 힘을 주는 말씀이다. 우리가 단순히 사망을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큰 환란과 곤고 가운데서 소망을 준다”고 했다.

그는 “시편에는 대단한 표현이 있다.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주님이 응답하셨다는 것은 대단한 신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임을 고백하는 약속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진리라고 한다. 지난해 영화 ‘덩케르크’를 보았는데 제게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영적인 면의 역사를 수정해 버렸기 때문”이라며 “덩케르크 구출 작전이 시작되기 며칠 전 윌리엄 템플 캔터베리의 대주교는 마음이 감화되어 국가 기도의 날을 왕과 수상에게 제안했다. 원스턴 처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작전을 밀어붙였었다. 그리고 대주교는 국민 모두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지금도 인터넷에 보면 교회 밖 길게 줄을 서서 교회로 기도하러 가는 흑백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주님, 악을 대적하여 싸워 이기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자신을 의존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을 우리 삶에서 쫓아낸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주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지 몇 시간이 지나자 깊고 어두는 낮은 구름이 해협을 덮었다. 이것은 항공기로 구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다를 건너는 작은 보트들이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항해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날 바다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한 바다가 됐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군인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환란의 때였으나 사람들은 주님을 부르며 다시 겸손해질 수 있었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정부가 아닌 것을 기억했다. 하나님 안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을 뺏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망도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럴 용기가 다시 한번 필요하다. 다시 한 번 담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기억할 능력이 필요하다. 누가 진정 이 세상을 지배하고 계시는지 큰 환난의 때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누군지 말이다”라고 하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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