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과 긴밀한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
뉴에이지 특징은 고대 종교 전통의 현대적 부활,
종교 통합과 혼합주의 시도, 범신론 세계관 보여

포스트모더니즘-뉴에이지의 교회 침투 부인 못 해
전인적 치유와 구원, 총체적 선교, 성경 권위 필요
성경적 세계관 무장, 복음의 능력으로 변혁시켜야

1960년대부터 현대인들의 과학만능주의의 유토피아적 꿈은 과학의 횡포로 인한 무서운 환경 파괴를 경험하면서 모더니즘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생태계의 파괴, 핵무기 경쟁,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기아 현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불안정성은 현대인들에게 심각한 위기를 안겨다 주었다.

이러한 모더니즘이 안겨다 준 현대인의 위기와 불안, 불만족, 부조리에서부터 평화, 질서, 조화, 진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A new millenium)의 사상적 형성의 움직임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은 모더니즘에서 배척했던 종교적 요소, 즉 영적인 것이라야 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현대인의 건강을 세계보건기구(WHO)는 세 가지의 안녕을 들었다. 즉 육체적, 사회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 세 가지에다 영적인 안녕(Spiritual Wellbeing)을 첨가했다. 물론 이 움직임은 힌두교에서부터 발생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중요 국면인 뉴에이지(New Age)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을 쉽게 정의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그의 책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변화하는 선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피력하였다. 첫째, 모더니티의 핵심인 합리성(合理性)의 개념변화가 확장추세에 있다. 즉, 이성주의 대두로 종교는 위협을 받아 조만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과는 반대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세계종교가 성장추세를 보이며, 기독교도 성장하고 특히 이성론과 유물론을 근거로 하는 공산 치하에서는 더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과학은 본질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Maryknoll: Orbis, 1991, pp. 349~362.)

두 번째 특징은 자연을 객관화하고 인간 이성과 의지로 주관하여 기술로서 자연을 종속시켜 마음대로 파괴한 결과 심각한 환경오염에 직면하게 되고, 인간 스스로는 기계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 주관과 객관 등의 이분법적 사고가 붕괴되고 ‘공생(Symbiosis)’의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Paul Hiebert. 1985. ibid., p.13.)

세 번째 특징은 서구중심의 일방통행식 선교개념의 붕괴와 자신학화의 등장과 신학적 상황화의 새로운 물결의 변화이다. 선교계에서는 제 1세계, 제 2세계, 제 3세계라는 말의 등장이 사라졌다. 이제는 2/3세계 또는 남방, 북방, 또는 다수의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더이상 교회 성장이나 선교 성장이 서구 일변도가 아니라, 오히려 서구교회와 선교운동은 많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소위 2/3세계 교회의 부흥 성장과 선교운동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네 번째 특징은 사실과 해석 간의 문제이며 완벽한 가치 중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지식은 과학적 지식까지도 그 상황에 따른 해석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음이 인정된 것이다. 전에 이성주의자들은 사실과 가치 사이에 명백한 구분 짓기를 요구했었다. 예컨대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의 사명이 자기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땅 군대귀신 들린 사람 한 명을 치유하시며 그 부근의 돼지 2천여 마리를 갈릴리 호수에 수장되기를 명하셨던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가치 있게 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인 것이다.

다섯 번째의 특징은 상호연관성 회복의 증대이다. 과거 모더니즘의 사고(思考)에는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여 타인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상호연관성 (Interdependence), 집결성(Togetherness), 공생성(Symbiosis) 등이 점점 회복추세에 있다는 것이다.(Bosch. ibid., 362.) 예컨대 UN의 결의 존중, 세계은행(World Bank)의 신설, 난민구제 대책, EU의 연합 등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과거 모더니즘 시대의 인간 기술중심 세계관에서부터 인간 이성의 연약성을 깨닫게 된 것(Recognition of feebleness of Human reson)과 어느 정도의 복귀 현상 (Restoration Phenomenon))의 추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중요 핵심은 뉴에이지 운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특징은 다음의 4가지로 압축해 본다. 첫째, 고대 종교적 전통의 현대적 부활이다(A modern rerival of ancient religious traditions). 이 운동은 동방의 신비주의, 현대철학과 심리학, 과학과 공상, 그리고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the Counterculture movement), 중국의 도교적 영향, 고대 영지주의, 신플라톤주의, 중세의 미신, 헬라의 신비주의, 인디언 사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Russel Chandler. Understanding the New Age. Grand Rapids: Zondervan, 1991:43-45).

둘째, 동방의 신비적 종교와 결합하면서 신영성(the neo-spirituality)을 추구하는 특성이다. 서구 현대인들은 동방의 신비주의가 후기 과학 시대의 영적 공허함과 절망감을 채워줄 것이라는 소망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무속적인 종교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추종자들은 우주에 무수한 영적 존재들이 펴져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영들과의 신비스러운 만남, 교류, 합일 등을 통하여 샤머니즘적인 영성 개발을 시도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환생 신드롬(책이나 영상매체 참조)은 뉴에이지 세계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셋째, 이 운동의 특징은 모든 종교를 상대화하면서 종교적 통합, 종교 혼합주의를 시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배후에는 단일사상(Monism) 즉, ‘모든 것은 하나이다’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인간, 신, 자연 모든 것이 하나다. 서로가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이며, 상호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개체 간의 차별성은 외관상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도 사실은 하나의 종교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넷째, 이 뉴에이지 운동의 세계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범신론(Pantheism)이다. 모든 궁극적 실체는 신(神)이다. 신은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을 통해 있다. 즉 모든 것은 결국 신이다.(Duglas R. Groothuis, Unmasking the New Age. Downers Grove: IVP, 1992:18.)

아울러 이들의 범신론 세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은 신’이라는 것이다. 즉, ‘우주의 주인은 없으며, 있다면 인간 각자가 바로 그러한 존재이다’(James W. Sire, The Universe Next Door, Downers Grove: IVP 1988:165.)라고 믿는다. 이 뉴에이지 운동의 교육자들은 인간의 목표를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 숨겨진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한다.(Theodore Roszak. Unfinished Animal. NY: Harper and Row, 1977:225.)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선교적 대안은 무엇인가?

21세기의 기독교계는 이러한 뉴에이지 운동이 이미 교회 안에 침투, 확산되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기독교인(학생들 포함)이 대중매체를 통해 성경적 세계관의 여과 없이 뉴에이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대했기 때문이다. 1996년 기독신문이 서울 시내 7개 교회의 중, 고등부 학생 183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전생이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해 ‘아니다’가 64.5%, ‘그렇다’가 24.1%, 그리고 ‘아마도’는 11.4%였다. 결국 35.5%가 전생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관적 혼란에 빠져있었다. 또한 183명 중 13명(6.9%)만이, 교회에서 전생에 관해 교육받았다고 대답했다.(기독신문 1996년 10월 12일 8면.)

또한, 1987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2%가 죽은 자와 만난 경험이 있고 미국인 성인 67%가 점성술, 운세론을 읽고, 초능력과 같은 심령현상을 믿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30만 명의 미국인이 윤회를 믿는다고 보고했다.(Ron Rhodes, New Age Movement, 이재하 역 12면.)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부르짖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 지성인들이 ‘기독교의 배타적 성격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교리를 배격하고 있다.(William Hocking. Re-thinking Missions.John Hick. God and the Universe of Faith.Daniel B. Clendenin. Many Gods, Many Lords.)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의 핵심을 차지하는 뉴에이지 운동의 영성운동에 대해서 우리 기독교회는 어떤 선교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첫째,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뉴에이지 세계관의 잘못된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세계관이므로, 교회는 전인적 치유와 전인적 구원(Holistic Approach)을 지향해야 한다. 영혼 구원만 외쳐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자들이 과거 모더니즘 시대에는 이원론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질병 치료에도 의학은 육체 치료(기계적 기능을 육체로 봄)에만 집중했고, 교회는 질병 치료를 위해 신유적 접근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죄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교회는 전인 구원, 전인 치유, 즉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건강(Spiritual wellbeing)을 지향하여야 한다.

셋째, 동시에 선교의 방법 또한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선교방법이 그것이었다. 즉,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섬기셨다(Preaching, Teaching & Serving).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with/for Mission)가 하나의 중요 전략이지만, 우리 모두가 만인 제사장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WAW’(Work as Worship)이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넷째, 교회는 성경적 권위와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쳐야 한다. 다섯째, 교회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주어야 한다. 여섯째, 교회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제공하여야 한다(영성 개발). 일곱째, 교회는 기독교적 대중매체를 통한 선교를 중요하게 활용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교회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센 물결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굳건한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를 변혁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계속>

강승삼 목사(전 KWMA 사무총장, 공동회장)

※이 글은 지난 7월 23~25일 열린 KWMA 평창 포럼의 발표 내용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네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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